점량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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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제도
신라시대 수도의 행정조직체. 일명 ‘모량부(牟梁部)’라 하였다. 경주 6부(六部) 가운데 하나이다. 524년 (법흥왕 11)에 만들어진 울진봉평신라비(蔚珍鳳坪新羅碑)에는 ‘잠탁부(岑啄部)’로 표기되어 있다.
이칭
이칭
모량부
목차
정의
신라시대 수도의 행정조직체. 일명 ‘모량부(牟梁部)’라 하였다. 경주 6부(六部) 가운데 하나이다. 524년 (법흥왕 11)에 만들어진 울진봉평신라비(蔚珍鳳坪新羅碑)에는 ‘잠탁부(岑啄部)’로 표기되어 있다.
내용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서기 32년(유리이사금 9)에 종래의 6촌 가운데 하나이던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을 개명하여 이에 손씨(孫氏) 성을 배정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을 후대에 아마도 469년(자비마립간 12)에 서울의 방리(坊里) 명칭을 제정하였을 때 종래의 족제적인 사회조직을 행정조직으로 개편함으로써 나타난 것인듯하다.

서천(西川)의 지류인 모량천 유역에 위치하였는데, 그 중심지는 현재의 경주 효현리 혹은 금척리 일대로 추정된다. 신라가 망한 뒤, 고려는 940년(태조 23)에 이를 장복부(長福部)로 고쳤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신라의 기원문제」(이병도, 『진단학보』 8, 1937 ;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사로(斯盧) 육촌(六村)과 경주고분」(김원룡, 『역사학보』 70, 1976)
「신라 상고시대의 육촌(六村)과 육부(六部)」(이종욱, 『진단학보』 49, 1980)
「울진거벌모라비(蔚珍居伐牟羅碑)에 대한 고찰」(이기백, 『아시아문화』 4, 한림대학교아시아문화연구소, 1988)
「新羅六部考」(末松保和, 『新羅史の諸問題』, 東洋文庫, 1954)
집필자
이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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