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 후기에, 좌사의대부, 첨서밀직사사, 정당문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366년 이존오(李存吾)와 함께 신돈(辛旽)을 탄핵하다가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였으나, 이색(李穡)의 구원으로 동래현령으로 좌천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1371년 신돈이 제거된 뒤 좌간의대부(左諫議大夫)로 다시 발탁되었다.
성균관대사성을 거쳐 우왕 즉위 후 좌대언·첨서밀직사사(詹書密直司事)가 되었는데, 1376년(우왕 2) 태(胎)를 예안현(禮安縣)에 안장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 뒤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제수되었고, 수성익조공신(輸誠翊祚功臣)에 올랐다.
성품이 공검하고 근후하여 관직에 있을 때 항상 정도를 행하였다. 당시 가묘제도(家廟制度)가 폐지되었으나, 제기를 별실에 간직하여두고 제삿날을 당하면 반드시 손수 씻어서 제사에 쓰도록 하였다.
나라의 일이 권신의 손에 좌우되는 것을 한탄하다가 병사하였다. 저서로는 『원재집(圓齋集)』이 있으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후천집(朽淺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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