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봉수(鳳叟). 아버지는 정태락(鄭台樂)이다.
1849년(철종 즉위년)부터 전라좌도수군절도사·충청도병마절도사·평안도병마절도사·삼도수군통어사 등 주요무직을 편력한 뒤 1870년(고종 7) 어영대장과 훈련대장이 되었다.
이듬해 강화도에 진무사(鎭撫使)로 부임하였는데 이 때 강화 손돌목에 침입, 불법행위를 자행한 미군함대의 처사에 강력히 항의하는 한편 통상제의를 거절하였다.
이에 무력을 앞세운 미군이 광성진(廣城津)에 쳐들어오자, 중군 어재연(魚在淵) 등으로 하여금 군사를 독려, 수비하게 하였다. 이 신미양요 이후 총융사(摠戎使)를 거쳐 지삼군부사(知三軍府事)에 이르렀다. 시호는 장숙(莊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