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 출신. 일명 정필성(鄭必成), 홍우식(洪宇植). 고성의 건봉사(乾鳳寺) 승려이던 정남용은 3·1 운동 직후 조직된 대동단(大同團)에 가입, 최익환(崔益煥)의 후임으로 이 단체의 선전활동을 주관하였다.
전협(全協)·최익환 등이 주도한 이 단체는 김가진(金嘉鎭)을 총재로 추대하고 전국적 조직을 꾀하는 한편, 의친왕 이강(李堈)을 상해임시정부에 참여시키기 위하여 망명계획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1919년 11월에 이을규(李乙奎)·한기동(韓基東)·송세호(宋世浩) 등과 함께 이강을 보위하고 국내를 탈출하였으나 상해로 향하는 도중 만주 안동(安東)에서 일본경찰에 잡혔다. 이로 인하여 징역 5년을 언도받았으며 옥고를 치르던 중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