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이지(履之). 한성부판윤 정언각(鄭彦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승지 정척(鄭惕)이고, 정문영(鄭文英)이며, 어머니는 홍순(洪純)의 딸이다.
외직으로는 영덕현감(盈德縣監)과 은율현감(殷栗縣監)을 지냈다.
1613년(광해군 5)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장령·제용감정(濟用監正)·상의원정(尙衣院正)·군기시정(軍器寺正), 사간·교리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1620년 사간으로 있으면서는 과거의 대리시험과 향리의 과거 응시를 허락할 것 등 과거의 폐단을 시정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 후 집의·부응교·응교·사성(司成) 등을 두루 역임하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정국이 역전되면서 이이첨(李爾瞻)의 심복으로서 폐모론에 가담하였다고 하여 위리안치(圍籬安置)에 처해졌다. 그의 형 형조참판 정조(鄭造)는 사형당하였으며, 대사간을 지낸 동생 정규(鄭逵)는 서인으로 강등된 뒤 멀리 도망가 숨어버렸고, 동생 의주부윤 정준(鄭遵)은 의주에서 주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