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부응교, 응교, 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이지(履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1년(명종 16)
사망 연도
1625년(인조 3)
본관
해주(海州)
주요 관직
사성
관련 사건
인조반정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부응교, 응교, 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이지(履之). 한성부판윤 정언각(鄭彦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승지 정척(鄭惕)이고, 정문영(鄭文英)이며, 어머니는 홍순(洪純)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외직으로는 영덕현감(盈德縣監)과 은율현감(殷栗縣監)을 지냈다.

1613년(광해군 5)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사헌부장령·제용감정(濟用監正)·상의원정(尙衣院正)·군기시정(軍器寺正), 사간·교리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1620년 사간으로 있으면서는 과거의 대리시험과 향리의 과거 응시를 허락할 것 등 과거의 폐단을 시정할 것을 건의하였다.

이 후 집의·부응교·응교·사성(司成) 등을 두루 역임하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정국이 역전되면서 이이첨(李爾瞻)의 심복으로서 폐모론에 가담하였다고 하여 위리안치(圍籬安置)에 처해졌다. 그의 형 형조참판 정조(鄭造)는 사형당하였으며, 대사간을 지낸 동생 정규(鄭逵)는 서인으로 강등된 뒤 멀리 도망가 숨어버렸고, 동생 의주부윤 정준(鄭遵)은 의주에서 주살당하였다.

참고문헌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인조실록(仁祖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국조방목(國朝榜目)』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