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종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예조참판, 경상도관찰사, 동지춘추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인보(仁甫)
  • 조계(棗溪)
인물/전통 인물
  • 본관광주(光州)
  • 사망 연도1549년(명종 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예조참판|경상도관찰사|동지춘추관사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병휴 (경북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예조참판, 경상도관찰사, 동지춘추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인보(仁甫), 호는 조계(棗溪). 정지하(鄭之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계우(鄭繼禹)이고, 아버지는 정윤적(鄭允績)이며, 어머니는 신자강(申子杠)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16년(중종 11)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1520년 경연기사관(經筵記事官)으로 사관의 올바른 임무수행을 건의하였다. 이어 사서·정언을 거쳐 경상도도사가 되었는데, 이 때 6품에서 5품으로의 승진이 너무 빨랐다 하여 사헌부의 반대를 받기도 하였다.

1527년 지평·문학을 역임한 뒤 헌납이 되어 정병(正兵)의 입역(立役) 과다의 폐단을 지적하였다. 2년 후 능성현령으로 나가 직무를 태만히 한다 하여 치죄당하기도 하였다. 이어 장령·집의 등 언관을 거치면서 행신(幸臣) 김안로(金安老)의 비행을 공격하기도 하고, 향촌교육의 내실화를 건의하는 등의 언론활동을 폈다.

1536년부터 사간·응교·집의·전한 등의 청요직(淸要職)을 역임한 뒤, 승정원우부승지·형조참판을 거쳤다. 1539년 예조참판으로 진위사(陳慰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한성부좌윤·호조참판을 지낸 뒤 충청도관찰사로 나가 선치하였고, 곧 동지중추부사가 되어 평안도의 양전(量田)을 순찰하기도 하였다.

이어 예조참판을 역임하고, 1547년(명종 2)에는 다시 동지중추부사에 보임되었다가 부총관으로 동지춘추관사를 겸하여 『중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 뒤 함경도관찰사·경상도관찰사 등 외직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조선명신록(朝鮮名臣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