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방산 ()

자연지리
지명
황해북도 사리원시 정방리의 동북쪽 문현리와 황주군 침촌리의 경계에 있는 산.
이칭
이칭
천성산(千聖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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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황해북도 사리원시 정방리의 동북쪽 문현리와 황주군 침촌리의 경계에 있는 산.
명칭 유래

옛 이름은 천성산(千聖山)이다. 기봉산(천성봉), 모자산, 노적봉, 대각산의 산마루가 서로 잇닿아 정방형을 이룬다 하여 정방산이라고 부른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정방산(政方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자연환경

정방산은 높이 480m로 일망무제한 재령평야를 끼고 있어 두드러져 보인다. 동쪽 기슭으로 입석천이 흐르고 서쪽 기슭으로 사리원~황주 간 도로가 통과하고 있으며 사리원까지는 약 8km이다.

규암과 운모편암으로 이루어진 정방산은 풍화와 침식을 받아 기묘하게 생긴 봉우리와 높이 100m 이상의 기암절벽, 정방약수, 연못이 있다. 소나무를 기본으로 하여 참나무, 단풍나무, 물푸레나무, 두릅나무, 박달나무, 산살구나무, 돌배나무, 복숭아나무 같은 교목과 목란꽃나무, 진달래, 철쭉, 싸리나무, 개암나무, 산초나무 등의 관목이 분포한다. 그리고 노루, 오소리, 너구리, 다람쥐, 꿩, 매, 전갈 같은 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이곳의 전갈서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형성 및 변천

산마루에 정방산성(둘레 12㎞, 성안의 넓이 약 2㎢)이 있다. 나말 여초에 도선(道詵)이 창안하여 쌓았다고 전하여지나 『고려사(高麗史)』의 기록이 없으며 조선 『문종신록(文宗新綠)』에 의하면 1451년(문종 1) 정분(鄭芬)이 성터를 답사하고 측량 결과를 보고할 때에도 산성은 없었다고 한다.

『황주읍지(黃州邑誌)』에 정묘호란 후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규모는 둘레가 2만4475척, 높이가 남쪽은 30척, 나머지 3면은 15척이며, 그 밖에 타첩(陀堞 : 활이나 총을 쏘거나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있게 쌓은 작은 성벽)과 사혈(射穴)이 각각 1,336개소, 포혈(砲穴)이 4,800개소, 치성(雉城 : 성의 외부로 돌출시켜 적을 향하여 사격할 수 있게 쌓은 성벽) 7곳, 곡성(曲城) 5곳, 동서남북에 문루가 있다. 적지 않은 규모로서 1895년(고종 32)부터 수성군제(守城軍制)가 폐지되고 보수를 하지 않아 훼손되었으나, 원형보존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자비산줄기의 말단부에 솟아 있어 웅장하며 경치가 아름다운 정방산성에는 신라 898년(효공왕 2)에 도선(道詵)이 창건한 성불사(成佛寺)와 안국사(安國寺), 정방산성의 성장 김성업의 업적을 기린 성장김성업비(城將金成業碑)가 있다. 성불사에는 응진전을 비롯하여 극락전, 명부전, 청풍루, 운하당 등 목조건물과 고려시대의 석조물인 4각5층탑이 남아 있다. 산성 남쪽에 홍건적(紅巾賊)을 섬멸한 자성(茨城)이 있다.

참고문헌

『조선대백과사전』(평양백과사전출판사, 2001)
『북한(北韓)의 자연지리(自然地理)와 사적(史蹟)』(통일원,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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