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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향직(鄕職).
이칭
  • 이칭정보(正輔)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나각순 (서울시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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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의 향직(鄕職).

내용

995년(성종 14) 고려 초 고유의 문무관의 관계(官階)가 중국식 문산계로 대치되자 이 관계는 향직으로 변하였다. 정보는 16위계의 향직 가운데 5품의 품계로 제9위에 해당된다.

이는 국가 왕실에 대한 유공자·무산계소유자·군인·서리(胥吏)·양반·장리(長吏 : 향리) 및 여진의 추장 등에게 주어졌는데, 이는 실직(實職)이 아닌 작(爵)과 같은 위계질서체제였다.

한편, 1028년(현종 19)에는 좌승(佐丞) 이하 원윤(元尹) 이상의 향직은 정직(正職) 산원(散員) 이하와 같이 나이 70이 되면 그 자손이 전정(田丁)을 바꾸어 세우게 하였고, 후손이 없으면 죽은 뒤에 바꾸어 세우라고 하였는데, 정보도 이에 포함된다.

따라서 정보의 신분도 국가로부터 일정한 명목의 토지급여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076년(문종 30) 제정된 경정전시과(更定田柴科)의 규정에 따라 정보(正朝로 잘못 표기됨.)는 제13과에 속하여 전(田) 35결(結), 시(柴) 8결을 받았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高麗時代の鄕職」(武田幸男, 『東洋學報』47-2,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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