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세귀(世貴). 광유후(光儒侯) 정배걸(鄭倍傑)의 손자로, 좌복야 참지정사(左僕射參知政事) 정문(鄭文)의 아들이다.
일찍이 음서(蔭敍)로 벼슬을 받았으나 예종 때 전시에 합격하여 정식으로 관직에 임명되었다.
인종이 즉위한 뒤 국학직학(國學直學)에 제수되었으며, 여러 번 자리를 옮겨 각문지후(閣門祗候)로서 승평군지사(昇平郡知事)가 되었다. 이후 예빈주부 겸 당후관(禮賓注簿兼堂後官), 상식봉어(尙食奉御)로서 춘주도안찰사(春州道按察使)를 역임하였다. 의종 때는 시호예부원외랑(試戶禮部員外郎)·시군기소감(試軍器少監) 등을 지냈다. 의종 때는 호예부원외랑(戶禮部員外郎)·시군기소감(試軍器少監) 등을 지냈다.
재직중에는 청검하다는 평을 들었으며, 공적인 일이 아니면 공경(公卿)의 문지방을 넘지 않았다. 또한, 산업에 개의치 않아 집에 저축이 없었으며, 있는 것이라고는 책상과 나무로 만든 의자뿐이었다.
당시 간의대부(諫議大夫)였던 김자의(金子儀)가 정복경의 덕행과 학문을 칭양하여 임금의 고문으로 천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