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분도총관, 사직,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64년에는 장령·사간(司諫)·보덕(輔德)을 역임하였고, 이듬해 다시 유배생활을 떠났다. 1782년(영조 6)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어 내수사를 혁파하고 능(陵)·원(園)·묘(墓)의 제도를 다시 확립할 것을 주장하였다. 1785년에는 보덕(輔德)으로서 세자를 위하여 『예학집요(睿學輯要)』를 올렸다.
그 내용은 정국본(定國本)·양덕성(養德性)·이연모(貽燕謨 : 후손에게 깊은 계책을 물려준 것)·돈효제(敦孝悌)·택빈료(擇賓僚)·근교도(謹敎導)·면학문(勉學問)·계태일(戒怠逸)이다.
1786년 호조참판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인명원(仁明園)의 원호(園號)가 잘못되었음을 밝히고, 아울러 그 이유로써 인명은 문정왕후(文定王后)의 휘호인 것과 후궁에게 원호를 줄 수 없다는 것을 들었다. 1787년에는 분부총관(分副摠官)에서 분도총관(分都摠官)으로 승진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사직(司直)에 임명되었다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서 치사하였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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