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괴산 출신. 1913년 채기중(蔡基中)·강순필(姜順弼)·한훈(韓焄) 등의 동지와 풍기에서 광복단을 결성하여, 무기를 비축하고 군자금을 수합하며 독립군 양성을 준비하였다.
1914년 보은군 보은면장 박창빈(朴昌彬)으로부터 10자루의 권총을 인수하여 비축하였고, 그 중에서 1자루는 이강년(李康年) 휘하에서 활동하던 김재성(金在性)에게 주어 박영효(朴泳孝) 등 친일파의 처단에 사용하게 하였다.
이 혐의로 일본경찰에 붙잡혀 5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풍기광복단이 대한광복회로 발전한 것을 보고 다시 광복회에 가입하여 군자금 수합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친일부호 장승원(張承遠)을 처단한 채기중·강순필 등을 몰래 피신시켰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