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6년(예종 11)보문각(寶文閣)을 설립하고, 이 전각의 홍루(紅樓) 아래 남랑(南廊)을 수리하여 정의당이라 이름붙이고 학사들이 강론하는 장소로 삼았다.
또 그 좌우편에 학사들이 휴식하는 장소도 만들었는데, 여기에 뽑힌 자는 모두 당시의 호걸이었다 한다. 구체적인 기록으로는, 1151년(의종 5)에 보문각학사·대제(待制) 및 한림학사에게 명하여 매일 정의당에 모여『책부원구(冊府元龜)』를 교정(校訂)하게 하였다는 기록이『고려사』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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