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자청(子淸). 정사의(鄭思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숙겸(鄭淑謙)이고, 아버지는 정희천(鄭希天)이다.
일찍이 정개청(鄭介淸)으로부터 수업을 받은 뒤 1591년(선조 2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00년(선조 33) 중국 장수의 접반관(接伴官)에 임명되었으나 분수에 넘치는 추한 짓을 하고 있다는 탄핵을 받아 병조좌랑의 직에서 파직당하였다. 1606년 예조좌랑에 다시 등용되고, 이어 강원도사(江原都事)에 임명되었다.
사람됨이 용렬하고 오활하여 열읍(列邑)의 업신여김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체차(遞差: 관직이 교체되면서 다른 관직을 받지 못한 상태)되었다.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예조판서 이이첨(李爾瞻)의 추천을 받아 1611년(광해군 3) 병조정랑에 다시 등용되었으며, 1615년에는 지평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