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사단칠정논쟁의 발단이 된 「천명도설」을 저술한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천명도설(天命圖說)」을 지어 조화(造化)의 이(理)를 구명하고, 그 뒤 1553년(명종 8) 이황의 의견을 따라 다시 정정하였다. 먼저 지은 것을 「천명구도(天命舊圖)」라 하고, 뒤에 정정한 것을 「천명신도(天命新圖)」라 해 현재까지 전해 온다. 우리 나라에서 「천명도설」을 시도한 것은 정지운이 처음인 것으로 본다.
물론 권근(權近)의 『입학도설(入學圖說)』과 같은 도상학(圖象學)이 있기는 하나 「천명도설」은 정지운의 독창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김인후(金麟厚)가 지은 「천명도」가 있다고 그 선후를 논하기도 하나, 정지운의 「천명도설」의 구도(舊圖)는 독창적이어서 최초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이 뒤에 사칠논쟁(四七論爭)의 발단이 되었다.
1561년(명종 16) 제자인 풍덕군수 안홍(安鴻)의 주선으로 천마산(天磨山)에 유람갔다가 병이 들어, 돌아오는 도중에 승평부(昇平府: 지금의 개풍군 풍덕리)의 강구(江口)에서 죽었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정지림(鄭之霖)·정식(鄭軾)·김은휘(金殷輝) 등이 있다.
고양의 문봉서원(文峰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1640년(인조 18)에 목판본으로 간행된 『천명도설(天命圖說)』이 있다.
참고문헌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천명도설(天命圖說)』
- 『퇴계집(退溪集)』
- 『해동명신록(海東名臣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