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향전」은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해동기화(海東奇話)』에 수록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양녕대군과 평양의 명기 정향 사이의 애정담을 다루고 있다. 양녕대군은 세종과 한 약속 때문에 여색을 멀리하지만, 정향이 꾀를 내 양녕대군의 마음을 사로잡고, 이를 알게 된 세종이 정향을 한양으로 불러 양녕대군과 재회하게 해준다는 내용이다.
한문본과 한글본 두 계열의 이본이 있다. 한문본은 일본 천리대본, 만송본, 도남본, 양은천미본 등이 있고, 한글본은 박요순 소장본, 김동욱 소장본, 고려대 소장본, 권우행 소장본, 연세대 소장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본, 박순호 소장본 등이 있다.
이 중 박순호 소장본은 한문본과 한글본이 합철된 독특한 형태이다. 박순호 소장 한문본의 경우 천리대본에 비해 축약 및 생략된 부분이 많은 동시에, 천리대본의 오류를 바로잡은 부분이 다수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박순호 소장 한글본은 합철되어 있는 한문본의 글자 하나하나를 좇아 번역한 것이지만 심리 묘사, 행동 묘사와 더불어 한시 등을 생략하거나 축약한 특징을 보인다.
한문본인 천리대본의 경우 문벌 의식이 두드러지는 데 반해 박요순 소장본,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본 등의 한글본은 대체로 문벌 의식이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한글본에는 양녕대군의 위선적 행동 같은 부정적 성격이 드러난 부분이 생략되어 있는 것 또한 특징적이다.
양녕대군과 평양의 명기 정향 사이의 연애 실화담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이 실화는 『 해동기화(海東奇話)』에 수록되어 있다.
태종의 장자 양녕대군은 세종에게 관서의 명승을 유람하고 오겠다고 한다. 관서는 본래 화류(花柳)의 고을이기 때문에 임금(세종)은 대군이 주색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상할까 걱정한다. 대군은 주색에 조심하겠다고 하여 임금의 허락을 받고 떠난다. 대군은 각 읍 수령에게 노소를 막론하고 여자는 일체 눈 앞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라고 엄명을 내린다.
대군을 떠나 보낸 임금은 형님이 산천 풍물을 구경하면서 한 잔 술도 못 마시고 한 계집도 가까이 하지 않고 돌아온다면 일생에 한(恨)이 남을 것이라 생각하고, 관서 수령들에게 대군의 적막한 객회를 풀어주라는 하교를 내린다. 이에 수령들은 대군의 엄명과 임금의 하교를 받들고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이 때 정향이라는 동기(童妓)가 감사에게 한 꾀를 내어올린다. 대군이 평양에 당도하여 문물을 구경하고 객사로 돌아오나 객사가 적막하기 그지없다. 감사가 올리는 진수성찬에 스스로 술 한 잔을 따라 마시니 기분이 상쾌하나 외롭기 그지없다. 감사가 돌아간 다음 대군이 혼자 있는데, 문득 나졸이 한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붙들어와 그녀가 객사를 침범했다고 한다.
그 여인은 18세에 남편을 잃었는데 망부의 제사에 쓸 닭고기를 고양이가 물고 가기에 고양이를 쫓다가 객사를 침범했다며 울면서 용서를 빈다. 통인이 나서서 그 여인이 자신의 누이동생이라 하며 죄를 용서해달라고 한다. 이에 대군은 그 여인을 용서해준다.
대군은 나졸을 물리치고 통인에게 집안 사정을 묻고는 그가 조는 틈을 타서 통인의 집을 찾는다. 과연 낮에 본 여인이 홀로 앉아 침선을 하고 있었다. 대군은 그 여인을 달래서 동침하고는 십여 일을 평양에 묵으면서 밤마다 찾아가 정을 나눈다. 대군은 작별에 임하여 여인의 치마폭에다 한시(漢詩) 한 수를 써준다.
정향은 감영에 들어가 그 치마를 감사에게 바친다. 감사는 그 치마를 상자에 넣어 서울로 보낸다. 임금이 보고 크게 기특히 여기고는 정향을 서울로 보내도록 한다. 임금은 정향의 아름다움을 보고 칭찬하며 그녀를 궁중에 있게 하고 대군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대군이 서울로 돌아와 임금을 뵈오니, 임금이 대군을 위로하는 주연을 베풀고 가희(歌姬)로 하여금 대군이 정향의 치마폭에 써 주었던 시를 읊게 한다. 대군이 이를 듣고 크게 의아해 하는데 한 무희(舞姬)가 나와 춤을 춘다.
대군이 그 무희를 보니 바로 평양에서 만났던 정향이었다. 대군은 비로소 모든 것을 깨닫고 임금은 정향을 불러 대군에게 인사를 드리게 한다. 이처럼 「정향전」은 아우인 세종과 형님인 양녕대군의 우애가 잘 묘사되어 있는 작품이다.
「정향전」의 창작 시기는 대략 18세기 초 · 중엽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결말부에 나타난 세종과 양녕대군의 화해 장면에 주목할 경우 '형제간의 우애'라는 주제를 도출할 수 있다. 동시에 양녕대군의 성적 금욕이 졍향의 꾀로 인해 무너진다는 점에 주목하면 이 작품은 훼절에 대한 풍자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