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공주 묘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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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敦化市) 육정산(六頂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 제3대 문왕의 둘째 딸 정혜공주의 묘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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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敦化市) 육정산(六頂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 제3대 문왕의 둘째 딸 정혜공주의 묘비. 비.
개설

중국 길림성(吉林省) 돈화현(敦化縣)의 육정산고분군(六頂山古墳群)에 있는 정혜공주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정혜공주의 무덤은 1949년 8월에 발견되어 ‘육정산고분군 제2호분(IM2)’으로 명명되었다. 이 고분은 당시 돈화현의 계동중학(啓東中學)과 연변대학(延邊大學) 역사과가 공동으로 정리한 9기의 고분 중 하나이다. 이 때 정혜공주묘비를 발견하였고 무너져 있었던 천장도 복원시켜 놓았다.

내용

정혜공주무덤은 대형 돌방봉토분〔大型石室封土墳〕으로서 널방〔玄室〕과 널길〔羨道〕 및 묘도(墓道)로 이루어져 있고 널방의 천장은 모줄임〔抹角藻井〕으로 되어 있어 전체적인 구조가 고구려 후기의 고분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이미 도굴되어버린 이 무덤으로부터는 목관(木棺)의 조각들, 돌사자 2점, 도금된 동제원두정(銅製圓頭釘) 4점이 발견되었다.

묘비는 화강암으로 된 규형(圭形)으로 높이 90㎝, 너비 40㎝, 두께 20㎝ 정도이다. 정면에는 비문이 해서(楷書) 정자로 음각되어 있고 그 주위에는 당초무늬〔唐草文〕를, 비수(碑首)에는 천선권운문(淺線圈雲文)을 음각하였다. 출토시에는 이 비가 7조각으로 파괴되어 있었는데 복원한 결과 모두 725자가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뒤 1980년 정효공주(貞孝公主)의 묘비가 완전하게 보존된 상태로 발견되어 정혜공주묘비에서 판독되지 않은 부분을 완전히 보충할 수 있게 되었다.

비문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정혜공주는 대흥보력효감성법대왕(大興寶曆孝感聖法大王)의 제2녀이다. 출가한 뒤 남편이 죽고, 수절하던 정혜공주도 보력 4년(777) 4월 14일 을미에 세상을 떠났다. 이 때 나이 40으로 시호를 정혜공주라 하였다. 보력 7년 11월 24일 갑신에 진릉(珍陵)의 서원(西原)에 배장(陪葬)하였다.’로 요약된다.

의의와 평가

정혜공주묘비의 비문을 통해 보력(寶曆)이라는 새로운 연호를 알게 되었다. 육정산고분군이 발해 초기의 왕실 또는 귀족의 무덤들이라는 사실과 이곳에서 가까운 오동성지(敖東城址)가 발해의 첫 도읍지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참고문헌

「발해정혜공주묘비의 고증에 대하여」(송기호, 『한국문화』2, 서울대학교, 1981)
「唐代渤海貞惠公主墓誌和貞孝公主墓誌的比較硏究」(王承禮, 『社會科學戰線』1982年 1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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