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동부승지, 황주문안사, 의주문안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 해 전국적으로 흉년이 들었는데, 정부의 구황 정책(救荒政策)이 삼남에만 치우치고 강원도와 경기도 일원에는 아무런 조처가 없음을 지적, 이의 시정을 간하는 소를 올려 왕의 하답을 얻었다.
1733년 사간원정언이 되고, 병조정랑을 거쳐 평안도도사로 부임, 청나라를 내왕하는 사람들에 대한 검색을 맡아 보았다. 1734년 사간원사간, 이듬해 사헌부집의, 1739년 시강원보덕 등을 역임하였다. 1741년 다시 사간이 되었는데, 당시 왕실의 외손이었던 원경하(元景夏)와 의견 충돌이 생겨 권력층으로부터 미움을 사게 되었다.
이후 여러 한직을 거치다가 1747년 동부승지가 되었으나 다시 원경하의 무고로 사직하였다. 1750년 황주문안사에 임명되고, 조사오위장(曹司五衛將)·병조참지 등을 거쳐 해미현감으로 나갔다가 곧 사직하였다. 1755년 의주문안사에 다시 임명되었으나, 원경하 일당의 모함을 받아 삼척으로 유배되어 배소에서 죽었다.
사장(詞章)에 뛰어나 조하망(曺夏望)·강박(姜樸) 등과 함께 교우 관계를 맺고 문명을 크게 떨쳤다. 저서로는 『퇴성헌유고(退省軒遺稿)』 12권이 전한다.
참고문헌
- 『국조방목(國朝榜目)』
- 『퇴성헌유고(退省軒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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