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천태사교의』를 찬술한 고려 광종 때의 승려로, 광종의 명으로 오월에 가서 나계(螺溪), 의적(義寂)과 함께 천태학을 연구함.
#가계 및 인적사항 『불조통기(佛祖統記)』 권10에 제관(諦觀, 미상~970)의 전기가 일부 전해지고 있다. 오월왕(吳越王) 전숙(錢俶)은 『영가집(永嘉集)』에 ‘동제사주(同除四住)’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고 덕소(德韶)에게 그 뜻을 물었다. 덕소는 이 말을 교의(敎義)라 하여 천태종 승려 의적(義寂)에게 물어보도록 하였다. 의적은 이것이 '지자 대사(智者大師)가 지은 『묘법연화경현의(妙法蓮華經玄義)』의 「위묘(位妙)」에 나오는 문구'라고 하면서, '당나라 말기에 천태종의 책들이 모두 해외로 유출되어 이제는 다시 보기 어렵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이에 오월의 왕은 사신에게 글월과 함께 50종의 보배를 주고 고려에 가서 천태종 관계 서적을 구해 오도록 하였다.
중국에 간 제관은 나계사(螺溪寺)의 의적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고 10여 년 동안 함께 천태학을 연구하였다. 그때 자신의 유일한 저술인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를 지었으나, 상자에 감추어 두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제관은 끝내 귀국하지 못하고, 어느 날 앉은 채 죽었다. 죽은 뒤 그가 쓰던 상자에서 빛이 났으므로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상자를 열어 보니 『천태사교의』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천태사교의』의 주석서가 70여 종, 주석에 대한 주소가 130여 종 간행되었다. 대표적인 주석서로는 송나라 고승 종의(從義)가 엮은 『천태사교의집해(天台四敎儀集解)』 3권, 원나라 때의 승려 몽윤(蒙潤)의 『천태사교의집주(天台四敎儀集註)』 등이 있다.주요 활동
학문과 저술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불조통기(佛祖統記)』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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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 강남석, 「제관의 『천태사교의』와 천태 사상」(『한국종교사연구』 9, 한국종교사학회, 2001)
- 김영길, 「고려 제관의 도송에 관한 고찰」(『한국불교학』 3, 한국불교학회, 1977)
인터넷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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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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