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함안 출신.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유흥수(柳興洙)·문홍의(文洪義) 등의 권유로 비밀결사인 대구사범학교 문예부에 가입, 민족문화의 창달과 항일의식을 연마하였다.
1941년 1월 박효준(朴孝濬) 등과 함께 문예부원들이 독립정신 선양을 주제로 지은 시와 작문을 감상, 비판하면서 독립정신을 고취하였다. 그 뒤 학교를 자퇴하고 고향에 내려가 사설강습소를 열어 농촌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민족의식을 앙양시키며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여름에 대구사범학교의 비밀 교양지인 『반딧불』이 일본경찰의 손에 들어가 대구사범학교의 비밀결사가 발각됨에 따라 잡혔다. 1943년 11월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광복 후 1948년에 대한민국 국군에 입대하여 복무하던 중 6·25 발발로 인해 전사하였다.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