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부교리, 교리, 이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16년에는 『가례원류』 사건에 얽힌 문제로 윤증(尹拯)을 배척하고 송시열(宋時烈)을 옹호하는 소를 올려 체차(遞差: 관직이 교체된 뒤 잠시동안 다른 관직을 받지 못한 상태)되었다가 이어 관작을 삭탈당하고 문외출송되었다.
그 뒤 울산부(蔚山府)로 귀양갔으나 그 해 7월에 방면되었다. 상소 당시 만류하는 사람이 많아 결단하지 못하였으나 어머니 정씨(鄭氏)의 영향으로 소를 올렸다. 이듬해 지평(持平)으로 복직되었고, 이어 홍문록(弘文錄)에도 선발되었다.
1719년 부수찬(副修撰)에 제수되어서는 단종복위와 김종서(金宗瑞)·황보 인(黃甫仁) 등의 신원(伸寃: 억울함을 풀어버림)에도 앞장섰으나 부교리 김운택(金雲澤)과 패초(牌招: 왕이 패를 내려 신하를 부르던 일)를 어겨 잠시 파직되었다가 곧 부교리(副校理)에 제수되었고, 이어 이조좌랑으로 옮겼다. 경종 즉위 후에도 부응교(副應敎)·교리 등을 역임했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경종실록(景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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