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경 암살사건 ( )

현대사
사건
1948년 6월 18일 제주 4·3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제9연대의 연대장 박진경 대령이 강경진압에 불만을 품은 대원들에게 살해당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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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48년 6월 18일 제주 4·3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파견된 제9연대의 연대장 박진경 대령이 강경진압에 불만을 품은 대원들에게 살해당한 사건.
역사적 배경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 단독선거에 반대하는 봉기가 일어나자 제주도 주둔 제9연대의 연대장 김익렬(金益烈)은 토벌보다 선무공작을 우선해야 한다고 보고 강경한 진압에 반대했다. 그러나 5월 6일에 열린 대책회의 결과 김익렬은 경질되고, 후임으로 5월 15일 박진경 중령이 부임하였다.

박진경 중령은 부임 초기부터 강경한 진압 작전을 실시했다. 5월 22일부터 6월 30일에 걸쳐 진행된 토벌작전으로 제주도민 5천여명이 체포되었다. 미군정은 5·10선거가 무효화되자 6월 23일에 재선거를 치르려 했으나 조건이 마련되지 못하자 6월 10일 행정명령을 발표해 선거를 다시 연기하고 강경진압에 나섰다.

경과

박진경 대령이 미군정의 방침에 따라 강경한 진압에 나서자 제9연대 내부에서는 이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5월 20일에는 9연대 1대대에서 부사관과 사병들이 대규모로 탈영했다. 그 결과 6월 1일에 제9연대는 해체되고, 병력은 제11연대로 통합되었다.

남로당 세포였던 제9연대 제3중대장 문상길 중위는 강경진압에 불만을 품고 연대장 박진경을 암살하기로 했다. 6월 18일 박진경의 대령 진급 축하연이 있은 직후 문상길 중위는 손선호 하사에게 박진경을 사살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손선호 하사는 취침 중이던 박진경 대령을 소총으로 사살하였다.

결과

수사과정에서 문상길 중위를 비롯해 강승규 일등중사, 황주복 하사, 김정도 하사, 손선호 하사, 배경용 하사, 양회천 이등상사, 신상우 일등중사 등이 체포되었다. 문상길, 신상우, 손선호, 배경용 등 4명은 8월 14일 열린 군법재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9월 23일 총살되었다.

제9연대는 7월 15일 재편성되었고, 연대장으로는 제11연대 부연대장이던 송요찬 소령이 임명되었다. 송요찬 소령은 제9연대의 숙군을 실시해 좌익 혐의자들을 축출했다. 박진경 암살사건은 국방경비대가 숙군에 박차를 가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참고문헌

『제주 4·3항쟁: 저항과 아픔의 역사』 (양정심, 선인, 2008)
『제주 4·3연구』(역사비평사, 1999)
『對非正規戰史, 1945∼1960』(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1988)
집필자
윤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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