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가 광복군을 기반으로 국군을 조직하기 위해서 대한국군준비위원회를 만들자 이를 후원하기 위한 단체가 잇따라 조직되었다. 1945년 9월에는 조선군사후원회, 11월 하순에는 한국광복군후원회, 대한광복군군사원호본부 등 세 단체가 조직되어 모금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후원조직의 난립으로 후원업무에 혼선이 오고 광복군을 사칭하는 집단 등으로 인한 폐해가 심각했기 때문에 광복군 국내지부사령부는 후원조직의 통합을 결의하였다.
이에 따라 1945년 12월 9일 광복군 국내지부사령부에서 세 단체가 참가한 가운데 통합을 위한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대한국군준비위원회의 오광선(吳光鮮)이 단체 통합을 위한 취지의 연설을 하고 각 단체를 대한민국군사후원회로 통합하여 후원활동을 총괄할 것을 결의하였다.
총재에는 임시의정원 군무위원을 역임한 조성환(曺成煥), 부총재에는 안재홍, 회장에 서정희, 부회장에는 조선군사후원회 회장 이해진(李海鎭)을 추대하였다. 또한 광복군을 사칭하여 금품을 갈취하는 등의 행위에 대해 엄중히 대응할 것을 천명하였다.
해산된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미군정의 사설군사단체 해산령에 따라 1946년 3월 1일 광복군 국내지부사령부가 해산한 무렵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군사후원회의 주요 활동은 광복군을 국군으로 개편하기 위한 모금활동으로 개인단위의 후원까지 총괄하였다. 대한민국군사후원회는 창립 초기 모금활동에 큰 성과를 거두었다. 대한민국군사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창립 이후 일주일이 지난 1945년 12월 16일까지 181,510원의 성금을 모금하여 대한국군준비위원회에 전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정치적으로는 임시정부의 외곽단체로 활동하였다. 신탁통치파동 정국에서는 탁치배격대회에 참가하는 등 반탁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1946년에는 비상국민회의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