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9년(고종 6) 의주에서 별장 한순(韓恂), 낭장 다지(多智)가 반란을 일으키자, 장군으로서 초무사(招撫使)가 되어 진압하였고, 이듬해 대장군으로 의주사람 윤창(尹昌) 등의 반란을 다시 진압하였다.
1222년에는 우군병마사로서 정주(靜州)에 침입한 동진군(東眞軍)을 토벌하였다. 1227년 상장군으로 우군병마사가 되어 정주(定州)·장주(長州)에 침입한 동진군을 방어하지 못하여 명주부사(溟州副使)로 좌천되었다.
이듬해 예부상서가 되고, 1232년(고종 19) 몽골의 침입을 받아 강화로 천도하자 어사대(御史臺)의 하인[皁隷]인 이통(李通)이 개경이 빈 틈을 타서 반란을 일으키자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서 중군진주(中軍陣主)가 되어 진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