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0년(원종 11) 삼별초의 난을 진압하면서 금성(錦城: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이 공격당하는 것을 보고도 구하지 않았다는 김방경(金方慶)의 탄핵을 받아 장군직에서 삭직되었다.
이듬해 복직되어 관노 숭겸(崇謙)·공덕(功德) 등이 다루가치(達魯花赤)를 죽이고 진도의 삼별초에게 가서 투항할 것을 꾀하자 장군 최문본(崔文本)과 함께 토벌하였다.
1272년 대장군으로서 경상도안무사로 있을 때 왜선이 금주(金州: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에 정박하자 일본과의 통교 때문에 원나라의 견책을 받을까 우려하여 몰래 환국하게 하였는데, 그 사실이 발각되어 홍다구(洪茶丘)에게 살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