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준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대사간, 광주부윤,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사장(士章)
  • 개명조시준(趙時俊)
인물/전통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730년(영조 6)
  • 사망 연도1809년(순조 9)
  • 본관풍양(豊壤)
  • 주요 관직대사헌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상일 (성균관대학교, 독문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광주부윤,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사장(士章). 개명은 조시준(趙時俊). 조상정(趙相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대수(趙大壽)이고, 아버지는 조집명(趙集命)이며, 어머니는 김만선(金萬鐥)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66년(영조 42)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이듬해 사간원정언에 처음으로 부임하여, 그 뒤 사헌부지평을 거쳐 홍문관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1768년에는 응제(應製)에서 차석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1769년 이득복(李得福)·홍수보(洪秀輔)·홍경안(洪景顔)·홍찬해(洪纘海) 등과 함께 영조가 기녀(妓女)를 축첩으로 삼은 조관(朝官)이나 유생에 대한 관직의 박탈과 성균관에서 쫓아낸 일에 대하여 너무 지나친 처사임을 상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금지하는 법령을 반포한 뒤 시일을 두고 처벌할 것을 건의하였다가 금성(金城)에 유배되었으나 영조의 병환이 쾌유한 경사로 인하여 석방되었다. 그 뒤 헌납·수찬·부교리·교리를 지낸 다음 1772년 승지를 거쳐 이듬해 대사간에 올랐고, 1774년에는 광주부윤을 잠시 맡기도 하였다. 1776년 대사헌에 올랐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