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사장(士章). 개명은 조시준(趙時俊). 조상정(趙相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대수(趙大壽)이고, 아버지는 조집명(趙集命)이며, 어머니는 김만선(金萬鐥)의 딸이다.
1766년(영조 42)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이듬해 사간원정언에 처음으로 부임하여, 그 뒤 사헌부지평을 거쳐 홍문관의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1768년에는 응제(應製)에서 차석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1769년 이득복(李得福)·홍수보(洪秀輔)·홍경안(洪景顔)·홍찬해(洪纘海) 등과 함께 영조가 기녀(妓女)를 축첩으로 삼은 조관(朝官)이나 유생에 대한 관직의 박탈과 성균관에서 쫓아낸 일에 대하여 너무 지나친 처사임을 상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금지하는 법령을 반포한 뒤 시일을 두고 처벌할 것을 건의하였다가 금성(金城)에 유배되었으나 영조의 병환이 쾌유한 경사로 인하여 석방되었다. 그 뒤 헌납·수찬·부교리·교리를 지낸 다음 1772년 승지를 거쳐 이듬해 대사간에 올랐고, 1774년에는 광주부윤을 잠시 맡기도 하였다. 1776년 대사헌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