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인서(寅瑞). 조중운(趙仲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도보(趙道輔)이고, 아버지는 조상경(趙尙絅)이며, 어머니는 이정태(李廷泰)의 딸이다. 이조판서 조돈(趙暾)과 우리나라 최초로 고구마재배를 실현시킨 조엄(趙曮)은 그의 형이다.
1767년(영조 43) 생원시에서 수석을 차지한 후 이듬해 식년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769년(영조 45) 승지를 거쳐 의주부윤에 임명되었으나 잠상(潛商)의 일에 대한 조사를 완결짓지 못하여 물러났다가 다시 승지로 복직하였다. 1772년(영조 48) 대사성을 지냈으며, 이듬해 김상복(金相福)의 추천으로 수원부사에 임명되었다.
그의 형 조엄 때문에 체직(遞職: 관직이 교체되면서 일시동안 관직제수가 보류된 상태)되었다. 1774년 이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마침 그의 형이 병조판서의 직위에 있었으므로 사임하고 체직해 줄 것을 청하여 이재간(李在簡)으로 대신케 하였으나 그 해 12월 다시 이조참의에 특별히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