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부응교, 응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경여(景輿). 조영선(趙榮先)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홍규(趙鴻逵)이고, 아버지는 조태현(趙台鉉)이며, 어머니는 이경우(李景祐)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82년(정조 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권지승문원부정자(權知承文院副正字)로서 경모궁(景慕宮) 혜빈(惠嬪)에게 존호(尊號)를 올리는 죽책문(竹冊文: 비빈 등을 책봉하는 글을 새긴 간책)을 작성한 공로로 6품으로 특진하였다.
이듬해에는 홍문록(弘文錄) 4점(四點) 22인 중의 한 명으로 선발되었다. 1786년에는 응교(應敎)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중국사신의 예에 어긋난 행동을 비판하였다. 그 뒤 부응교(副應敎)로서 활동하다가 춘당대(春塘臺) 친시(親試)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되었다. 이어 이듬해에는 응교로서 활동하였다.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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