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당나라의 군사 제도를 참고하여 중앙군으로 10위(衛)를 설치했다. 각 위의 임무는 명확히 전해지지 않으나, 당나라의 제도를 바탕으로 경성(京城) 방비를 맡았을 가능성이 있다.
『신당서(新唐書)』 발해전(渤海傳)에 의하면 좌웅위에는 대장군 1인과 장군 1인을 두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일본일사(日本逸史)』 권7에 의하면 798년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위군대장군 좌웅위도장 상주장 개국자(慰軍大將軍左熊國都將上柱將開國子) 대창태(大昌泰)가 나타나고 있어, 장군 아래에 도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도장을 낭장(郎將)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