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삼국시대 중시, 귀당총관, 경정총관 등을 역임한 관리. 장군, 대신.
개설
생애와 활동사항
백제 멸망 후 661년 4월에는 부흥운동을 꾀하던 백제 잔병(殘兵) 소탕전에 참전했고, 곧이어 문무왕이 즉위한 뒤 그해 7월 고구려 원정에 착수했을 때는 천존·천품(天品) 등과 함께 귀당총관(貴幢摠管)이 되어 김유신을 도왔다. 이 때 김유신의 부장(副將)으로 각 전선을 전전하였다. 667년(문무왕 7) 가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고구려 원정에 참가, 이듬해 6월 결전 때는 진순(陳純)과 함께 경정총관(京停摠管)으로 평양성 공략전에서 공을 세웠다. 다시 670년 7월에 백제의 잔적 토벌에 참가, 천존 등과 함께 7성을 공취하고 2,000여 명을 죽였다.
그 뒤 당나라와의 전쟁에 종군, 이듬해 6월 백제 지역으로 쳐들어가 가림성(加林城)을 치고, 석성(石城 : 현재의 충청남도 임천)에서 당나라 군사와 결전, 당병 5,300여 명을 베고, 백제 유장(遺將) 2명과 당나라 과의(果毅 : 고급장교) 6명을 포로로 잡는 등 공을 세웠다. 효소왕 때 낭도였던 득오가 그를 사모해 지은 향가 「모죽지랑가(慕竹旨郎歌)」가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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