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시 ()

목차
고대사
제도
신라시대의 관직.
이칭
이칭
시중
목차
정의
신라시대의 관직.
내용

집사부(執事部)의 장관직으로 651년(진덕여왕 5) 설치되었다가 747년(경덕왕 6)에 시중으로 개칭되었다. 임명자격은 제5관등인 대아찬(大阿飡)에서 제2관등인 이찬(伊飡)까지 규정되어 있어 진골 출신만이 취임할 수 있었는데, 때로는 국왕의 근친이 이에 임명되는 경우도 있었다.

약 1세기 동안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30여명의 중시보임 기록이 보이고 있어, 임기는 3년 정도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국왕의 행정적인 대변자인 동시에 정치적 책임을 짊어지는 안전판과도 같은 존재였다.

즉, 그 자체 왕권에 기생하는 세력으로서 신라 전제왕권의 방파제 내지는 전위적 임무를 한 셈인데, 뒤에는 점점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오히려 왕권을 제약하는 존재로 변화한 점이 주목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신라정치제도사』(이인철, 일지사, 1993)
「신라 집사부의 성립」(이기백, 『진단학보』 25·26·27합병호, 1964 ;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신라 하대의 집사성」(이기백,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三國史記にあられた新羅の中央行政官制について」(井上秀雄, 『朝鮮學報』 51, 1969 ; 『新羅史基礎硏究』, 東出版, 1974)
집필자
이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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