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누암리 고분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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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충주 누암리 고분군
충주 누암리 고분군
선사문화
유적
국가유산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앞트기식돌덧널무덤 ·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충주 루암리 고분군(忠州 樓岩里 古墳群)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고분군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2005년 03월 25일 지정)
소재지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 루암리 산 41 외 일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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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앞트기식돌덧널무덤 · 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내용

충주누암리고분군은 1980년 중원문화권 설정을 위한 지표조사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1983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2005년에는 사적으로 변경 지정되었다. 1989년 국립문화재연구소 · 충북대학교박물관의 조사에서 횡혈식석실분 2기, 고려시대 석곽묘 3기, 토광묘 1기, 1990년 국립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 충북대학교박물관의 조사에서 횡혈식석실분 4기, 고려시대 토광묘 1기, 석곽묘 1기, 1991년 중원군 · 충북대학교박물관의 조사에서 횡혈식석실분 17기, 횡구식석실분 4기, 소형석곽묘 3기, 고려시대 석곽묘 1기가 확인되었다.

이후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현,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에서는 중원문화권 주요 고분군 종합학술연구사업의 일환으로 2008년 누암리고분군에 대한 정밀지표조사와 GPS측량을 실시하여 7개 구역에서 총 234기의 고분을 확인하였고, 수치지도상에 기록화를 완료하였다. 조사결과 고분들이 지표상에 드러난 채 방치된 상태였다. 이에 연구소는 구역별 성격 규명과 고분군의 보존 · 관리를 위하여 대표 고분 2~3기에 대한 표본발굴을 실시하였다.

제1차 발굴조사는 '가'구역 내 1,000㎡를 2008년 10월 6일부터 12월 12일까지 진행하였다. 조사결과 신라시대 횡혈식석실분 2기, 조선시대 토광묘 2기, 시대미상의 석곽묘 1기, 석렬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횡혈식석실분 45 · 50호분은 해발 197.6m의 봉우리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하단부 해발 125m 지점 남쪽 사면에 조성하였다. 봉토를 둘러싼 호석은 23단이며, 봉분의 지름은 14.917.6m, 잔존 높이는 4m 내외이다. 석실의 축조와 함께 봉토를 동시에 쌓아 올렸으며, 석실의 중심부로 갈수록 마사와 벌흙을 섞어 단단하게 다졌다. 특히 석실과 맞닿은 부분은 적갈색의 점질토를 덮어 밀봉하였다.

천장의 높이는 190㎝ 내외이며, 궁륭형(穹窿形)의 둥근 천장으로 정상부에 커다란 판석 12매를 덮어 마무리하였다. 석실의 평면형태는 장폭비 1.23:1 이하의 방형이다. 방형의 평면형태는 누암리고분군과 하구암리고분군에서 조사된 횡혈식석실분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연도는 2기 모두 입구에서 보면 오른쪽의 동벽과 나란하게 조성한 우편재이다. 누암리고분군과 하구암리고분군에서는 대체로 오른쪽에 연도를 조성하고 있으나 중앙에 연도를 조성한 석실분도 많다. 시상은 편평하고 각진 할석을 45단으로 쌓아 구획한 후 내부에 부정형 할석을 채워 넣었다. 할석의 빈틈은 점토로 채웠으며, 그 위에 지름 510㎝의 강돌을 깔아 마무리하였다. 시상의 규모는 대체로 길이 230㎝, 너비 80100㎝이다. 추가장은 1차 시상과 동일하게 덧붙여 나가는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한편 45호분은 서쪽 호석열 안에 지름 1.1m의 석곽을 만들어 토기 40점이 부장되었다.

제2차 조사는 2010년 4월 19일부터 6월 30일까지 '가'구역 내 9,900㎡에 대한 시 ·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신라시대 횡혈식석실분 2기, 횡구식석곽묘 1기, 석곽묘 2기, 조선시대 토광묘 1기, 회곽묘 1기가 확인되었다. 3기의 석실분은 남한강과 탑평리 일대가 조망되는 능선의 사면에 위치한다. 54호분은 횡구식석곽묘로 남서단벽을 입구로 사용하였으며, 바닥에는 작은 할석을 깔고, 북쪽 단벽에 상대적으로 큰 할석으로 단을 설치하였다. 횡혈식석실분 56 · 60호분은 지름 8.7~9.2m이며, 경사가 급한 하단에만 호석을 돌려 봉토의 유실을 막았다. 60호는 봉분의 상단에 구를 돌려 토사 등의 유입을 막았다. 경사면의 일부를 굴착하거나 수평정지한 후 석실과 봉토를 함께 축조하였다.

석실의 구조와 형태, 출토유물은 기존에 조사된 누암리고분군, 하구암리고분군과 유사하다. 출토유물은 대부분 토기류가 중심이며, 소량의 금속류와 장신구류가 확인되었다. 석실 및 매납유구에서 출토된 단각고배와 부가구연대부장경호 등의 유물로 보아 신라가 충주로 진출하여 국원소경이 조영되기 시작하는 6세기 중반~7세기 초에 해당하는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충주누암리고분군은 충북지역에서 위계가 가장 높은 신라후기의 고분군이다. 신라는 국원성이 있던 충주에 557년(진흥왕 18) 소경을 설치하고 이듬해에 가야에서 귀화한 사람들과 왕경의 귀족, 부호를 이 지역으로 집단 이주시켰다. 이후 국원소경은 678년(문무왕 18)부터 685년(신문왕 5)에 걸쳐 완비된 5소경 체제로 개편되었고, 757년(경덕왕 16)에 중원경으로 개칭되면서 계속해서 신라의 거점도시 역할을 하였다. 충주누암리고분군은 이 시기 국원소경과 중원경을 다스리던 6~7세기대 지배층의 집단무덤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충주 누암리고분군 2차 시·발굴조사보고서』(김성범 외,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2012)
『충주 누암리고분군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보고서』(연웅 외,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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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권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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