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밀양 금천리 유적은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굴립주건물터가 발굴된 마을터이다. 조사 결과 신석기시대 주거지 2동, 야외노지 2기, 적석(積石)유구 2기, 청동기시대 주거지 9동, 굴립주(掘立柱)건물지 9동 등이 발굴되었다. 그밖에 수혈 4기, 함정 1기, 집석유구 6기, 논·밭·저습지 등도 확인되었다. 유구는 지형 양상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공간 구분이 이루어졌다. 자연제방에는 주거지를 비롯한 생활공간이, 배후습지에는 생산공간인 논이 위치한다. 이 유적은 취락구조 및 생활상을 세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산외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굴립주건물터 발굴된 마을터. 취락유적.
개설
내용
청동기시대는 전기, 중기, 후기의 3시기로 구분된다. 전기 유구는 장방형 주거지 8동, 굴립주건물지 9동, 집석유구 6기로 대부분의 유구가 해당된다. 주거지는 모두 등고선과 직교하고 자연제방의 남쪽에 군집을 이룬다. 공통적으로 평면 형태가 장방형이고 위석식노지, 저장혈 등이 확인된다. 중기 유구는 송국리형주거지 1동, 함정 1기, 수혈 4기 등이 확인되었다. 후기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저습지에서 이 시기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토기류는 호형토기, 바리모양 토기(발형토기), 소형토기, 붉은 간토기(적색마연토기), 덧띠토기(점토대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석기류는 돌살촉(석촉), 석창, 석부, 돌칼(석도), 부리형 석기, 보습, 공이, 따비, 갈판, 지석 등으로 다양하다. 이외에 가락바퀴(방추차), 그물추(어망추), 토주, 원판형토제품 등의 유물도 출토되었다.
굴립주건물지는 유적의 남쪽 중앙부에 밀집되어 군집을 이루고 있다. 주거지보다 비교적 높은 곳에 조성되었다. 농경사회에는 생산물과 다양한 도구들을 저장 · 보관하기 위한 창고시설이 반드시 필요하다. 수혈은 청동기시대 논을 파괴하고 조성되었다. 장축방향은 등고선과 직교하며, 평면 타원형이다. 함정은 평면 장타원형으로 배후습지에 형성된 논의 서쪽 끝부분에서 확인되었다. 단면형태 ‘Y’자형으로 주혈, 목창과 같은 별도의 시설은 설치되지 않았다. 집석유구는 밭이 위치한 곳에 밀집되어 있다. 평면 원형과 부정형으로 지면 위에 할석과 천석을 쌓아놓았다. 10~25㎝ 내외의 할석과 천석이 비교적 가지런하게 쌓여져 있다. 3·4호 집석유구에서는 40㎝ 정도의 큰 천석이 확인된다.
논은 자연제방의 북쪽에서 배후습지로 이어지는 완만한 사면에 조성되었다. 구획 논으로 70면 이상 조사되었다. 한 면의 규모는 길이 2~6.5m, 너비 1.5~5m 정도로 다양하다. 논면은 서쪽으로 갈수록 점차 넓어지며, 지형에 따라 형태와 규모가 조금씩 다르다. 서쪽은 형태가 비교적 정연한 장방형 내지는 세장방형으로 조성되었으나 중앙부에서부터 동쪽으로는 형태가 정연하지 못하다. 논의 시설은 논둑, 수구, 수로 등이 확인된다. 논둑은 너비 15~20㎝, 높이 3~5㎝ 내외이다. 논둑의 교차 지점은 ‘X’자 형태로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논에서는 2개의 수로가 확인되었다. 하나는 경계둑과 나란하게 동-서, 다른 하나는 논의 중앙 부분을 동-서 방향으로 관통하고 있다. 옛 하천이 흘렀던 방향이 동쪽에서 서쪽이므로 취수구는 저습지와 만나는 동쪽 끝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보시설이 수로의 끝에 해당되는 저습지에서 확인되었으므로 이곳에 취수구가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저습지는 북쪽에 넓게 형성되어 있다. 저습지 내부에는 완전히 토탄화(土炭化)된 유기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보를 구성하는 통나무 등 각종 부재에 인공이 가해져 있으므로, 기술적인 측면에서 논과 관련된 관개시설로 판단된다. 밭은 유적의 동남쪽에서 분포범위만 확인하였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밀양 금천리 유적』(윤호필 외, 경남대학교박물관,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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