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양은 일반적으로 모든 물체의 겉에 나타내는 장식무늬를 말하며, 의식주에 쓰이는 가재도구, 곧 옷감이나 기물·도구 등을 비롯한 공예·조각·건축 등의 조형미술에 장식적으로 나타낸 여러 가지 무늬의 형태를 문양(文樣, 紋樣)·문채(文彩), 또는 그냥 무늬라 하고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미켈(Mickel,W.J.)에 따르면, “사람의 눈이 공간을 오랫동안 바라보면 어느 한 점으로 중심을 찾아서 안정을 얻고자 하므로, 그 지루함과 불안정감을 없애기 위하여 공간을 메우려는 무늬가 나타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렇듯 문양은 인간만이 지닌 의미 있는 상징적인 사고의 표현물인 것이다.
문양의 조형적 표현의 시원은 먼저 그림문자[圖畫文字], 또는 직물(織物)과 편물(編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시시대에 의사전달의 수단이 되었던 신성한 표시나 기호(記號)를 무늬를 비롯한 그림과 문자의 시원으로 보고 있듯이, 큰 나무와 암벽·바위·자갈 또는 동물의 뼈나 뿔[骨角] 등에 자연·비자연적인 어떤 형상을 선각(線刻), 부조(浮彫)하거나 아니면 채색으로 표현하는 행위에서 무늬와 그림, 나아가서는 문자의 형성을 이루게 된 것이다.
중국의 갑골문자(甲骨文字) 같은 상형문자는 산천의 생김새와 조수(鳥獸)의 발자국, 우주운행의 형상 등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며, 이집트의 신성문자(神聖文字)나 앗시리아·바빌로니아·페르시아에서 사용된 설형문자(楔形文字) 등과 더불어 모두 문양의 요소가 드러나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렇듯 문양은 가장 원초적인 의도적 표현에서 시작되어 오늘날 모든 예술 가운데 가장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장식예술로 발전되었다.
곧, 문양은 인간의 욕구를 어떠한 형태로 나타내는 것으로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독특한 특성인 상징화의 능력에 기초하면서, 모든 예술이 그렇듯 자연대상과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문양의 양식은 크게 기하학적 양식·식물문양식·동물문양식·자연문양식 등으로 나누게 되는데, 이들의 여러 구성법은 모두 좌우상칭(左右相稱)과 리듬이라는 기초적인 예술법칙의 순리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기하학적 양식에서 보이는 삼각형·사각형·능형(菱形)·지그재그형 등은 모두 직선에서 시작되며, 원형·파상형(波狀形)·와형(渦形) 등은 곡선에서 출발하지만 모두 좌우상칭과 리듬의 법칙으로 근본도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기하학적 무늬의 발생에 관해서는, 첫째 지구 어느 곳에서든 자생적으로 발생했다고 보는 설과, 둘째 편물이나 직물을 짜는 과정 또는 울타리를 엮는 데서 시원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곧, 사선(斜線)이나 지그재그무늬로 이루어지는 그 리드미컬한 반복을 인간이 즐겨 모방하게 되어 토기(土器) 등의 그릇 표면에까지 옮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원시종족에서 보듯 얼굴에서 발끝까지 치장하고 있는 문신의 선무늬나 원시동굴에서 나온 골각기(骨角器) 등의 유물에 보이는 이러한 무늬는 규율적인 격식의 직물과는 관계없는 순수한 리듬과 추상적인 좌우대칭의 기하학적 양식으로서, 자연물에서 빌려온 모방묘사라기보다는 주어진 표면을 메우고 꾸미는 순수한 장식적 도형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젬퍼(Semper,G.)에 따르면, 편물과 직물에서 비롯된 문양의 발생은 모든 예술 창작의 기원에 해당되는 것으로, 작은 가지를 엮는 것에서 수피(樹皮)를 짜는 것으로 옮겨지는 것은 손쉽고도 자연스러운 것이며, 여기서 바로 기계직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곧, 풀줄기와 식물섬유에서 식물성 또는 동물성 방모사(紡毛絲)가 만들어졌으며, 여러 가지 색의 풀줄기를 갖가지 변화 있는 순서로 엮고 짜는 과정에서 문양으로서 자리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하학적 문양은 점과 선으로서 삼각무늬·사각무늬·문살무늬·번개무늬·방사선(放射線)무늬·톱니[鋸齒]무늬류와 원무늬·타원무늬·동심원(同心圓)무늬·곱팽이[渦, 소용돌이]무늬류 등을 만드는데, 이들을 보통 원시(原始)무늬라고 부른다.
이러한 원시무늬는 곧 주술적인 특징을 지니는데, 크게 일반생활에 유용한 물건의 제작에 따르는 기술적인 작업과정에서 나타나는 예술적 산물이거나, 그와는 달리 특수한 신비적 정신세계에 연관되는 어떤 관념의 표현 또는 이러한 관념에 결부되는 제사적(祭祀的)인 목적으로 제작되는 의례적 산물로 볼 수 있다.
곧, 번개무늬는 번개를 나타내면서 비와 관련된 상징적 표현으로, 인도·일본 등에서는 비를 오게 하기 위해서 번갯불이나 천둥소리를 모방해 내야 했다는 것이다.
삼각무늬는 재생의 뜻과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므로, 삼각무늬의 배열은 곧 다산과 동물의 여성적 상징물로 볼 수 있다. 또, 곱팽이무늬는 나선형이어서 물의 소용돌이, 뱀과 조개 및 고사리과 식물의 와상(渦狀), 그리고 회오리바람 등의 자연적인 형상에서 얻어진 것으로 보고, 그 상징적 의미는 죽음이거나 우주의 무한함 또는 그 반대적인 의미로 여기는 것이다.
특히, 조개와 달 그리고 여성과의 상징적 관계에서 고대 중국에서는 달이 차면 조개가 많고 달이 기울면 조개가 없어진다고 믿는 다산성(多産性) 출생을, 일본에서는 조개와 여성의 생식기를 동일시하는 풍요신앙을 보여주고 있다.
원무늬는 태양을 상징하는데, 한편으로는 타원무늬와 더불어 씨족공동체의 성원(成員)이나 씨족신의 수호 밑에 있는 씨족 개개인의 혼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보고 있다.
원시미술에서 이러한 기하학적 무늬 외에 인류생활과 신앙에 밀접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동물무늬가 있다. 석기시대 이전부터 골각기나 자갈의 형태에 맞추어 물고기·개·인형 등을 간단하게 새기고 있지만, 청동기시대에 와서 각종 의기(儀器)와 무기·장신구에 동물의 조형과 무늬, 그리고 수렵·어로 생활을 다양하게 표현한 예술적인 장식무늬를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화유적으로 알려지는 암각벽화(巖刻壁畫)에도 청동기에 나타나는 것과 같은 동물과 여러 가지 추상적인 도상이 선각으로 나타나 있어 원시무늬의 특성을 알려 주고 있다.
이러한 선사시대의 미술에 보이는 장식무늬는 수렵·어로·농경 생활과 토착신앙 및 다른 문화의 유입에 따른 대륙적 성격까지 나타내어, 의사의 전달과 표시를 위한 기호와 표지(標識)로 여겨지는 도상(圖像), 또는 토템신앙과 제전(祭典) 및 의식(儀式) 광경을 나타내는 장식무늬와 그림은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는 것이다.
(1) 선사시대의 문양
퉁구스족 계통인 우리 한민족은 원시시대부터 황하 유역 문명과 만몽적(滿蒙的) 북방계통의 복합성격이어서 시베리아·만주로 연결되는 북방아시아계의 장식과 무늬 요소를 깊이 간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또 지형적으로 서로 이웃하고 있는 까닭에 한문화(漢文化)의 영향 속에서 불교문화까지 유입되어 인도와 서역문화도 크게 지니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 이른바 장식예술이라 할 수 있는 표현이 나타난 것은 구석기시대부터이겠지만, 신석기시대에 와서 토기 등의 생활도구에 실제적인 선각무늬가 유행하게 되었다. 토기에 능형과 점살빗으로 된 시문구(施文具)로 점선과 짧은 빗선을 띠모양으로 연속시켜 나타냄으로써 이른바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로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빗살무늬토기는 그 형태와 더불어 스칸디나비아에서 시베리아에 걸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것과 같은 계열의 형식을 보이고 있다. 곧, 북유럽의 핀란드·스웨덴 남부, 독일 북부, 러시아의 서부 카렐리아에서 오카(oka)·볼가강 상류지방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빗살무늬는 생선뼈 같은 평행사선무늬와 번개무늬·파상무늬·삿자리[繩蓆]무늬·파상점선무늬·톱니무늬·우점(雨點)무늬·덧붙임[隆起]무늬 등을 비롯한 기하학적 무늬들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하학적 무늬는 청동기시대에 와서 더욱 정교하게 발전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예로 이른바 세선무늬거울[細線文鏡]로 불리는 거울[靑銅鏡]을 보면, 가늘고 세련된 정교한 사선으로 가득 찬 삼각무늬를 중심으로 동심원무늬·성광(星光)무늬·방사선무늬·문살무늬 등을 나타내고 있다.
(2) 고대의 문양
삼국시대에 오면 장식문양은 그 기법과 형태가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주무늬와 부수적인 장식무늬로 구분되고 있으며, 선조법(線彫法)·면조법(面彫法)·압찰법(押察法)·채묘법(彩描法)·상감법(象嵌法) 등의 평면적 기법과 투조법(透彫法)·원조법(圓彫法, 肉彫法)·부조법(浮彫法) 같은 입체기법이 두루 쓰이고 있다.
이 가운데 채묘법과 선조법은 가장 오랜 전통기법이지만, 삼국시대의 의장적 특징은 역시 투조법과 선조법·상감법·누금세공법(鏤金細工法)·타출법(打出法)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투조기법의 발달은 중국 한문화 금공기술과 나아가 스키타이 금공문화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어, 내륙 시베리아에서 흑해 연안까지 연결되는 동아시아문화권의 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또, 이 기법은 평면적인 묘사로 의장된 구성이기도 하여 고분벽화나 칠기의 무늬의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삼국시대의 무늬는 크게 식물문계와 동물문계·운기문계(雲氣文系)로 나눌 수 있으며, 식물문계에는 인동(忍冬)무늬·연화무늬 등 초화(草花)무늬 외에 수목(樹木)무늬도 보이고 있다.
동물문계는 거의 한문화 요소인 용·봉·일월 등의 무늬와 새무늬·녹각(鹿角)무늬·날개[鳥翼]무늬·나비무늬들이다. 그 밖에 운기문계의 무늬와 불꽃[火焰]무늬 등이 나타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관식(冠飾) 등의 장신구류에 보이는 문살무늬·비늘무늬·귀갑(龜甲)무늬·그물[網狀]무늬와 T꼴을 구성한 번개무늬 등을 부수적 문양으로 가지고 있다. 동물무늬는 식물무늬보다 더 고식(古式)이며, 특히 사실적인 묘사에서 벗어나 표상적(表象的)이고 고아(古雅)한 맛을 보이고 있어 강렬한 북방 유목민족의 특성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동물을 소재로 한 투조무늬는 신라뿐만 아니라 고구려 진파리(眞坡里) 제1호분 관형금구(冠形金具), 백제 무령왕릉(武寧王陵) 금동신[金銅飾履], 가야 고령 고아동(古衙洞) 말갖춤 안금구(鞍金具) 등에도 보이고 있어, 삼국에 모두 유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용(龍)의 형태나 그것에서 탈화(脫化)한 형식을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당시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와 삼국 및 가야의 문화적 동시성을 알려 주는 것이며, 나아가서 일본의 고분 미술품에도 다소 경화(硬化)된 투조 용무늬가 있어 같은 연관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금조(禽鳥)무늬와 인동당초무늬를 혼합시킨 투조무늬도 호우총(壺杅塚) 말안장의 전륜식금구(前輪飾金具)와 무령왕릉 금동신 등에서 보인다.
호우총 금구는 한쌍의 봉황에다 유려한 당초무늬를 바탕무늬로 채워 투조하였고, 무령왕릉 신은 당초화시킨 귀갑무늬를 연속시켜 바탕으로 깔고 그 안에다 봉황이나 연꽃·연잎[荷葉] 등을 투조하여 마치 구름과 연꽃이 있는 하늘에 봉황이 나는 듯 표현하고 있다.
또, 천마총(天馬塚) 금동투조패식(金銅透彫佩飾)과 금관총(金冠塚) 패식은 새모양을 외형으로 하면서 날개쪽과 몸체, 꼬리에는 당초화된 용무늬를 좌우상칭으로 만들었다.
금관총 투조어형패식(透彫魚形佩飾)에도 세 잎의 팔메트와 당초화된 용무늬가 운기(雲氣)무늬처럼 전개되어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천마총과 금관총의 투조조익형관식(透彫鳥翼形冠飾)도 전면에 가득 투조된 S꼴의 작은 용무늬가 마치 고식(古式)의 괴운(怪雲)무늬 또는 당초무늬로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이렇듯 양식화된 동물투조무늬는 먼저 멀리 알타이산지(山地)의 문화, 곧 바지리크나 노인훌라고분 등의 유물에서 그 선구적인 형식을 보게 된다. 그것은 곧 대칭 형식의 쌍금(雙禽)·쌍룡(雙龍) 또는 야수(野獸)의 무늬로, 전체적인 표현양식은 그리스적인 당초무늬의 표현과 닮았다.
한편 고대 중국의 기물에 보이는 도철(饕餮)무늬(두 개의 눈을 주체로 한 기이한 무늬)·기봉(虁鳳)무늬(뿔이나 날개의 모양이 새와 비슷한 상상의 새를 그린 무늬)·훼룡(虺龍)무늬(짐승 측면을 그린 무늬)·괴운무늬 등이 탈화한 형식에다 그리스계 당초무늬의 영향을 지닌 것도 보이고 있다.
또, 용과 봉황에서 탈화된 표현인 운기무늬, 당초무늬도 한대(漢代) 칠기의 장식무늬에서 이미 나타나 있는데, 곧 채협총(彩篋塚)의 채문칠갑편(彩文漆匣片)에서 몸체는 와운(渦雲)무늬처럼 S꼴·C꼴로 전개되면서 머리쪽은 사실적인 용머리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장은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물론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백제 무령왕릉의 왕·왕비 금제관식(金製冠飾)과 나주신촌리 제9호분 초화형금동관(草花形金銅冠) 등에 나타난 투조무늬는 고구려·신라와는 달리 서역적(西域的)인 성격을 보여 주고 있다.
곧, 무령왕릉 관식은 굵고 가느다란 변화가 있고 생동적인 사실풍의 팔메트를 수목형(樹木形)으로 도안화하였는데, 가운데는 연꽃과 연잎 그리고 팔메트 잎이 대칭을 이루면서 병에 꽂힌 형식을 하고 있다.
이러한 무늬형식은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보이는 것이나, 서위(西魏) 때 그려진 돈황석굴사원(敦煌石窟寺院)의 인동·연화와 남조(南朝)의 화상전(畫像塼) 등에 보이는 인동무늬들과 연관되며, 나아가서 부여 규암리절터의 문양전(文樣塼) 및 백제문화의 영향이 큰 일본 호류사석가여래천개천인상(法隆寺釋迦如來天蓋天人像)에도 나타나 있다.
통일신라에 오면 고유문화와 불교 및 당(唐)나라를 통하여 들어온 국제적인 문화요소가 모두 융합되어 다양한 가운데 화려하고 세련된 문양을 보여 준다.
보상화(寶相華)무늬와 당초무늬는 삼국시대의 인동·연화무늬에서 더욱 변화되고 화려해졌는가 하면, 새로이 수화쌍금(樹花雙禽)무늬·쌍수(雙樹)무늬 등 서상적(瑞相的)인 소재와 보운(寶雲)무늬 등이 좌우대칭으로 구성되어 나타나는데, 이는 이란의 사산왕조 문양의 영향으로서 당대(唐代)의 아스타나고분과 일본 호류사의 사자수문금(獅子狩文錦)에도 보이고 있다.
황룡사(皇龍寺)터에서 나온 쌍금문은식판(雙禽文銀飾板)과 경주박물관의 쌍금대수문석각(雙禽對樹文石刻) 및 와전(瓦塼)에서의 좌우대칭 구성인 쌍조무늬·쌍룡무늬·쌍봉무늬, 그리고 기린(麒麟)·천마(天馬)·비천(飛天) 등을 쌍으로 구성한 무늬들이 통일신라에서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밖에 사자무늬·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무늬·가릉빈가(迦陵頻伽)무늬 등도 통일신라의 금공·와전·도토(陶土) 제품 등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장식무늬이다.
(3) 고려의 문양
고려는 태조 때부터 통일신라의 융성하였던 불교의 바탕 위에 유교사상을 지향하여 격조 있는 새로운 문화를 꾀하게 되었다.
문양에 있어서도 그 시문기법(施文技法)으로서 상감기법(象嵌技法)의 발달을 보이는데, 특히 청동은입사기법(靑銅銀入絲技法)은 상감청자와 나전칠기의 발달을 가져오면서 그 의장과 무늬가 전에 없던 한국적인 풍취를 주제로 한 회화적 표현을 등장시켜, 우리의 생활정감과 시취(詩趣)가 풍기는 특성을 나타내게 되었다.
곧, 고려자기의 무늬는 당시 사대부들이 즐겨 찾았던 화재(畫材)인 야국(野菊)·수양버들·갈대·물새·운학(雲鶴) 등이 있는 풍경화적인 정경의 무늬여서 한국적 정취를 자아냈고, 소나무 아래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학무(鶴舞)를 즐기는 선비를 나타낸 의장도 보이고 있어 한유한 고려인의 마음을 읽게 하고 있다.
이 밖에도 매화와 대·난초·연꽃·모란과 산새의 무늬 등이 보이는데, 매·난·국·죽은 군자(君子)의 기상을 뜻하므로 선비들이 가까이하던 것이어서 조선시대에 와서도 큰 특색을 보이는 무늬요소가 되었다.
(4) 조선의 문양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초기는 청화백자(靑華白磁) 등에서 원·명대(元明代) 북종화가(北宗畫家)의 필법에 못지 않게 능숙하고 격조 있는 회화적 장식무늬가 그려지며, 나아가서는 명대 후기부터 성행한 남송화풍의 영향으로 수묵화를 주로 한 운치 있는 문인화풍의 의장무늬도 성행하게 되었다.
조선 중엽에는 산수·인물뿐 아니라 영모(翎毛)·화조(花鳥)·묵매(墨梅)·묵죽·포도 등의 그림 소재가 무늬의장으로 성행하며, 후기에 와서는 산수무늬를 중심으로 장생(長生)무늬, 어개(魚介)무늬, 용과 범, 그리고 여러 가지 길상도(吉祥圖)로 당시의 자연관과 행복관을 반영한 해학적인 생활문양이 나타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우리 나라 문양은 삼국시대 이래 대체로 불교적 요소가 많지만, 그와 더불어 유교·도교적인 요소도 포용하고 있다. 곧, 공예미술에 특징적으로 쓰인 길상적인 문양은 다복(多福)·다수(多壽) 및 다남(多男)·다손(多孫) 등 자손 번영을 상징하는 소재가 많이 나타나 있다.
이러한 문양요소는 선사시대부터 믿어 왔던 천명관(天命觀) 속에서 팔괘(八卦)와 태극(太極), 일월상(日月象) 등의 상징적 도상을 나타내어 길리(吉利)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또, 불교적인 길상무늬인 칠보(七寶)·팔보(八寶)의 문양은 여의(如意)·길경(吉慶)·장명(長命)을 뜻하는 것으로, 이는 도가에서도 팔선(八仙)의 상징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도자기와 금공의장 및 건축의장에 많이 나타나는 여의두문(如意頭文)·연판문(蓮瓣文)·보상화문 등의 화문형식은 고대의 운문(雲文)과 연화문 등에서 발전시킨 도안문양으로서 다양한 형식을 보이고 있다.
여의두문은 심(心)자의 고자(古字)에서 상징화되어 운문·여의두문·보상화문, 그리고 변천하면서 평안(平安)·여의(如意)·화합(和合)·길경(吉慶)·길리(吉利)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가구나 기물의 장식무늬로 가장 많이 쓰였고 유·불·선의 복합적인 상징물이 되었다.
또, 민간생활 속에 잠재되어 있는 일월과 오악(五嶽)이 상징화된 문양도 회화적인 산수풍경무늬로 그려져, 장생신앙(長生信仰)을 내포한 이른바 십장생무늬로 나타나 여러 종교적 요소를 함축한 길리적인 것이 되어 건축·가구·복식 및 잡기물(雜器物)에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건축에 나타나는 창호(窓戶)의 창살무늬와 단청의 금문의장(錦文意匠) 등에 주로 보이는 만자(卍字)무늬·아자(亞字)무늬·정자(井字)무늬·전자(田字)무늬·귀갑무늬·사슬[鎖]무늬·금강저(金剛杵)무늬와 각종 추상적인 무늬도 거의 장생신앙과 벽사(辟邪)의 의미로 쓰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문양요소는 아주 오랜 전통적 생활관념 속에서 복합적인 신앙요소를 지니면서 그 의장과 시문기법에 따라 다양하게 변천, 발전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