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표면 지름 55㎝, 측면 너비 14㎝. 사찰에서 사용되었던 북[또는 반자(盤子)]으로, 앞면은 편평하고 뒷면이 비어 있어 농악기인 징과 비슷하다.
표면의 의장(意匠)은 굵은 융기선으로 4줄의 동심원(同心圓)을 돌리고 그 중앙부에 크게 자리잡은 자방(子房)을 중심으로 촘촘히 둘러진 연판(蓮瓣), 그리고 내구(內區)에 소문대(素文帶)와 외구(外區)에 운문대(雲文帶)가 둘러져서 동심원상(圓心圓狀)으로 4칸의 구획이 나누어진다.
자방 안에는 원권상(圓圈狀)의 연자(蓮子)가 모두 7개 들어 있는데 연자의 주위에는 도드라지게 표현된 2중의 세선으로 6엽 능화형(菱花形)을 이루었다. 자방과 연판 사이, 내구와 외구의 사이, 또 표면 둘레에는 각각 쌍사(雙絲)가 둘러진 태선(太線)이 도드라지게 표현되고, 연화문의 가장자리에는 같은 형식의 태선이 둘러져서 연화를 돋보이게 한다. 중간에는 아무 장식이 없고 외구에는 쌍구(雙鉤)의 당초구름무늬가 유려하게 장식되었다.
측면에는 중앙에 도드라진 선으로 좌우를 구획하였고 그 선상에 3개의 여의두(如意頭)모양의 얄팍한 고리가 상단과 좌우에 각각 고정되었다. 또 측면에 187자에 이르는 장문(長文)의 명문이 오목새김으로 새겨졌는데, 첫머리에 ‘高麗二十三王環甲之年壬子四月十二日在於京師工人家中鑄成智異山安養社之飯子(고려23왕환갑지년임자4월12일재어경사공인가중주성지리산안양사지반자)’라는 문구가 있어 1252년(고종 39)에 주성되어 지리산 안양사에서 사용되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안양사(安養社)는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에 소재하였던 절로서 특히 『동국여지승람』 진주목(晉州牧) 불우조(佛宇條)에서 이 절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청동북이 어떻게 옥천사에 소장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제작자인 공인별장(工人別將) 한중서(韓仲敍)는 이 옥천사 청동북과 더불어 부안 내소사 동종(보물, 1963년 지정) 등 여러 점의 유품을 남기고 있어 고려 말의 뛰어난 장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많은 수의 권문귀족과 승려들이 발원한 내용이나 안양사의 사(社)라는 이름에서 이 청동북이 고려 말에 유행하였던 신앙결사(信仰結社)의 한 형태로 조성된 기념비적 작품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