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과 화살을 제작하는 공인은 어느 시대에나 각각 전업화(專業化)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의 각종 공장의 기록과 기술자 명단에서 그들을 ‘○○匠’이라 호칭하지 않고, 유독 ‘궁인(弓人)’ · ‘시인(矢人)’이라 한 것을 보면 각별히 차등을 두어 예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전통적인 활은 쇠뿔[牛角]과 쇠심 같은 유별난 재료를 사용한 각궁(角弓)이라는 점에 특징이 있다. 활짱(활의 몸)의 손잡이 부분(줌통)과 양쪽 끝(정탈목 고잣잎)에는 참나무와 뽕나무를 각각 대지만, 강력한 탄력을 유지하는 오금 부위에는 죽심(竹心)을 넣고 그 안팎에다 쇠뿔과 쇠심줄을 부레풀로 접착시킴으로써 탄성(彈性)의 강도를 한껏 높였다.
이때 수우각(水牛角 : 무소뿔)을 깎아 댄 것을 흑각궁(黑角弓)이라 하고, 또 한우각(韓牛角)은 백각궁(白角弓)이 되는데, 백각으로는 큰 활을 만들지 못하는 결점이 있어 흑각궁을 높이 쳤다. 이러한 각궁은 목궁(木弓)이나 죽궁(竹弓)에는 비할 수 없이 화살이 먼거리에 미치는 강궁(强弓)에 속한다.
가장 일반적인 정량궁(正兩弓)은 활짱의 길이가 5.5척, 군왕(君王)이 위용으로 지니는 예궁(禮弓)은 6척에 달한다. 전투용에는 대소의 차이가 있으나, 기마용(騎馬用)의 동개는 단궁(短弓)에 사용되는 것이다.
화살은 시누대[箭竹]로 만들며 활과 마찬가지로 세심한 공정과 갖가지 합재(合材)로 이루어진다. 조선시대에는 군기시(軍器寺)에서 활과 활촉을 만드는 공장이 있었고, 또, 선혜청(宣惠廳)에 활의 재료를 바치던 공물계(貢物契)가 있어서, 어교(魚膠) · 정근(正筋 : 쇠힘줄) · 진사(眞絲) · 궁삭목(弓槊木) · 치우(雉羽) · 궁현사(弓弦絲) · 괄추목(括抽木) 등이 공물의 품목이었다.
궁시장으로 지정된 무형유산은 드물다. 1978년 2월 23일 시장(矢匠)으로 지정된 박상준(朴商俊)은 2001년 8월 24일 별세하였고, 1996년 12월 10일 궁장(弓匠)으로 지정된 김박영(金博英)은 2011년 4월 11일 별세하였다. 1996년 12월 10일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궁시장 기능보유자가 된 유영기(劉永基)는 2023년 2월 18일 별세하였다. 그 외 박상준의 아들 박호준(朴浩濬)이 2008년 5월 7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같은 때에 김종국(金鍾國)도 시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김종국은 2021년 9월 1일 명예보유자로 변경 지정되었다.
또 지방에서는 1986년 전라남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광양궁시장 김기(金起)가 있었으나 2022년 5월 26일 별세하였다. 1980년 12월 30일 경상북도무형문화재(현, 시도무형유산)로 지정된 예천궁장 권영학(權寧鶴)은 2015년 5월 27일 궁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