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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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의 향직(鄕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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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시대의 향직(鄕職).
내용

고려 초의 관계(官階)는 995년(성종 14)에 중국식 문산계(文散階)로 대치되어 향직으로 변하였다. 이때 중윤(中尹)은 고려 초와 마찬가지로 9품계 16관계 중 16위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가장 하위의 품계였던 것은 확실하다.

향직은 국가왕실에 대한 유공자와 무산계(武散階) 소유자를 비롯하여 고령자·군인·서리(胥吏)·양반·장리(長吏: 향리) 및 여진(女眞) 추장 등에게 주어졌는데 이는 실직(實職)이 아닌 작(爵)과 같은 신분질서체제였다. 향직의 설치 향직의 설치 의미에 대하여 관인을 상대로 한 중국적 문산계와 계통을 달리하는 고려적 질서체계로 파악하는 견해와 와 중앙에 대비되는 지방의 위계제로 보는 견해가 있다.

향직은 1298년(충렬왕 24)을 전후로 하여 소멸된 것으로 보이는데, 중윤 역시 이때 사라진 것으로 파악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시대 관직·관계 연구』(박용운,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7)
「고려초 향리제의 성립과 실시」(이순근,『김철준화갑기념 사학논총』, 지식산업사, 1983)
「高麗初期の官階」(武田幸男,『朝鮮學報』41, 1966)
「高麗時代の鄕職」(武田幸男,『東洋學報』47―2,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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