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천의 및 혼천시계 ()

혼천의 및 혼천시계
혼천의 및 혼천시계
과학기술
유물
문화재
관상감 천문학 교수 송이영(宋以頴)이 만든 조선시대 천문시계(天文時計).
내용 요약

혼천의 및 혼천시계는 관상감 천문학 교수 송이영이 만든 조선시대 천문시계이다. 1669년에 시간 측정과 천문학 교습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홍문관에 설치하였다. 지구의에 세계지도가 결합되어 있는 혼천의 부분과 톱니바퀴로 움직이는 혼천시계 장치가 축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시간과 천체의 위치를 동시에 알 수 있다. 이 천문시계는 조선의 전통적인 혼천의에다 서양식 기계시계인 자명종의 작동원리, 서양 지구의와 세계지도를 결합시킨 독창적인 작품이다. 한국과학기술사에서 ‘서양과학기술의 수용과 융합의 과정’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정의
관상감 천문학 교수 송이영(宋以頴)이 만든 조선시대 천문시계(天文時計).
개설

198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1669년(현종 10)에 관상감의 천문학 교수였던 송이영이 만든 천문시계(天文時計)로서, 홍문관에 설치하여 시간 측정과 천문학 교습용으로 사용하던 것이다.

구조는 크게 천구의인 혼천의(渾天儀) 부분과 기계식 시계장치인 혼천시계(渾天時計)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지구의가 포함된 혼천의 부분과 톱니바퀴로 움직이는 혼천시계 장치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시간과 천체의 위치를 동시에 알 수 있게 한다.

이 천문시계는 조선의 전통적인 혼천의에다 서양식 자명종의 작동원리를 결합시켜서 만든 것으로서, 한국과학기술사에서 ‘서양과학기술의 수용과 융합의 과정’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내용

높이 99.0㎝, 길이 118.5㎝, 두께 52.5㎝의 나무상자 속에 진자식(振子式) 탈진기(脫進機)로 속도가 조절되는 기계시계가 장치되어 있고, 나무상자의 왼쪽 상단에는 천구의(天球儀)인 혼천의가 설치되어 개방되어 있다.

혼천의의 지름은 약 40㎝이며, 그 중심에 지름 약 8.9㎝의 지구의(地球儀)가 자리 잡고 있다. 이 혼천의 부분과 오른쪽 나무상자 속에 장치된 기계식 혼천시계 부분은 서로 축으로 연결되어 있다.

혼천시계 부분, 즉 나무상자 속의 시계장치는 기본적으로 두 개의 추를 이용한 낙하운동의 힘으로 작동된다. 그 중 큰 추는 시각을 알려주는 바퀴와 톱니바퀴들을 회전시키는데, 이것들은 탈진기가 연결된 진자에 의하여 일정한 속도를 갖도록 조절된다.

또한 이 추의 낙하운동에 의해 수직축의 바퀴가 회전함으로써 12시를 알리는 시패(時牌)가 혼천시계의 창문 앞에 나타나게 되어 있다. 혼천시계 부분에 사용된 진자식 탈진장치는 1657년 호이겐스(Christiaan Huygens)가 처음으로 발명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의 작은 추는 종 치는 장치, 즉 타종(打鐘) 장치에 동력을 제공한다. 앞에서 설명한 시패로 시간을 알리는 장치는 구슬로 신호를 발생하는 부분과 연결되어 있는데, 여기서 발생한 구슬신호가 타종 장치로 전달되어 작은 추를 조금씩 낙하하게 만들고 이 추의 낙하하는 힘에 의해 타종 장치의 막대가 종을 치게 되어 있다.

한편 혼천의 부분은 크게 육합의(六合儀)와 삼신의(三辰儀), 그리고 지구의(地球儀)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이 중에서 혼천의의 맨 바깥을 두르고 있는 육합의는 지평환(地平環)과 천경흑쌍환(天經黑雙環), 천위적단환(天緯赤單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삼신의는 삼신의흑쌍환(三辰儀黑雙環), 적도단환(赤道單環), 황도단환(黃道單環), 백도단환(白道單環), 월운환(月運環)으로 구성되어 있다.

육합의와 삼신의를 구성하는 각종 환들은 지평좌표와 천구의 적도좌표, 태양과 달의 운행궤도를 보여준다.

혼천의 부분은 지구의를 관통하고 있는 북극축에 의해 혼천시계 부분과 연결되어 있다. 그 결과 혼천시계 부분에서 발생한 동력은 북극축을 하루에 1회전을 하도록 만들고, 이렇게 전달된 회전력은 태양과 달의 주기적 운동을 시현한다.

사실 혼천의 부분의 중심에 있는 지구의는 육합의와 삼신의와 달리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혼천의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것이다. 지구의는 지구설(地球說)을 토대로 하는 것인데, 지구설은 16세기 말 예수회 선교사들에 중국에 도래하면서 비로소 동아시아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한 지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혼천의의 중심에 지구의를 설치하는 방식은 애초 서양으로부터 전래된 것이다.

한편 혼천의 중심에 있는 지구의에는 세계지도와 경위도선이 함께 선명하게 음각되어 있다. 경도선과 위도선은 각각 10도의 간격으로 새겨져 있어 지구의 위에는 경도선이 36개, 위도선이 18개가 새겨져 있다. 또한 적도를 중심으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이 붉은 색으로 그어져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혼천의 중심에 위치한 지구의에 그려져 있는 세계지도에서는 호주 대륙과 남극 대륙이 분리되어 있으며, 호주 북동부 지역인 카펀테리아(Carpentaria) 지역이 ‘가본달리(嘉本達利)’라는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카펀테리아(Carpentaria)라는 지명은 유럽의 지도에서도 17세기 중반 이후에야 등장하는 지명이다. 오상학 등의 연구에 따르면, 서양 선교사들이 중국에서 만든 세계지도들 중에서 이 지명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페르비스트(Ferdinand Verbiest, 중국명 南懷仁)가 1674년에 만든 「곤여전도(坤與全圖)」인데, 여기서는 ‘가이본대리아(加爾本大利亞)’라는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 점이 조금 다르다.

또한 지구의에 수록된 세계지도의 윤곽과 지명들은 1800년에 중국의 장정부(莊延敷)가 제작한 「지구도(地球圖)」를 최한기(崔漢綺)가 1834년에 중간한 「지구전후도(地球前後圖)」의 그것과 가장 유사하다.

이런 사실들을 고려해 보건대, 현재 이 지구의에 새겨져 있는 세계지도는 18세기 이후 알려진 지리정보를 반영하여 19세기 초 이후에 새롭게 그려진 지도를 토대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현황

혼천의와 혼천시계의 원본은 현재 고려대학교박물관에 소장, 전시되어 있는데, 부품의 일부가 훼손되고 유실되어 작동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복원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데, 2009년에 이용삼, 이용복, 김상혁 등에 의해 복원품 1기가 작동모델로서 제작되어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 소장, 전시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혼천의 및 혼천시계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천문시계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유물로서, 동아시아 전통의 수격식(水激式) 혼천시계의 작동원리에다 서양식 기계시계인 자명종의 작동원리를 결합시켜 만든 독창적인 천문시계이다.

또한 혼천의 부분은 전통적인 혼천의에다 서양으로부터 전래된 지구설과 지리지식을 토대로 하는 지구의와 세계지도를 결합시켜서 만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혼천의 및 혼천시계는 동아시아와 서양의 과학기술 지식이 융합되고 조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로서, 세계 시계기술사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사 상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런 이유로 동아시아 과학사 연구의 선구자인 조셉 니담(Joseph Needham)은 이 천문시계를 높이 평가하면서 “세계의 유명한 과학박물관에는 그 모조품을 반드시 전시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한편, 혼천의 및 혼천시계는 1669년(현종 10)에 송이영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이후 1687년(숙종 14)에 서운관 관원인 이진(李縝)에 의해 중수되는 등 몇 차례 개정, 혹은 중수되었던 듯하다.

특히 혼천의 중심 부분의 지구의에 그려져 있는 세계지도는 18세기 이후 전래된 지리지식과 세계지도의 내용이 반영되어 있어 19세기 초 이후에 새롭게 그려진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국보 제230호 송이영의 혼천시계』(김상혁, 한국학술정보, 2012)
『우리의 과학문화재』(송상용 등, 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 1994)
「송이영의 혼천시계 제작과 작동 구조 문헌연구」(김상혁·고경신, 『충북사학』제18집, 충북사학회, 2007)
「송이영(宋以穎) 혼천시계(渾天時計)의 천체운행 장치 구조와 작동원리 연구」(이용삼, 김상혁, 『우주과학회지』제24권 2호, 한국우주과학회, 2007)
「조선시대의 세계지도와 세계 인식」(오상학, 『지리학논총』별호 43, 서울대학교, 2001)
「한국의 과학문화재 조사보고 1908-1985」(전상운 등, 『한국과학사학회지』제6권 1호, 한국과학사학회, 1984)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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