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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수 이용(스프링쿨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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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
개념
빗물이나 눈의 일부가 땅 속으로 침투되어 모래 · 자갈 등으로 이루어진 지층이나 암석의 간극을 메우고 있는 물.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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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빗물이나 눈의 일부가 땅 속으로 침투되어 모래 · 자갈 등으로 이루어진 지층이나 암석의 간극을 메우고 있는 물.
내용

학문적으로 땅속에 있는 물에는 광물에 결정체로 부착되어 있는 물도 있고 흙입자에 부착되어 있는 토양수(土壤水) 형태로 부존하고 있는 물도 포함되나 이런 상태의 물까지 지하수라고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지하수는 지구의 중력에 의하여 지하를 유동할 수 있는 물만을 의미한다.

지하수는 그 근원상 바다나 강의 지표수가 증발되어 구름이 되고 이것은 비나 눈으로 땅 위에 강수(降水)되어 그 일부는 다시 유출되거나 증발되고 나머지 일부는 지하로 삼투(渗透)되어 지하수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지하수는 샘[泉]이나 우물의 형태로 지표수의 근원이 되는 지표상의 물 순환수 과정의 일부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지하수를 이루려면 모래나 자갈같이 물을 잘 통과시키는 지층인 투수층(透水層)이 있어야 하고 그 밑에는 암반층이나 점토층 같은 물이 잘 통과되지 않는 지층인 불투수층이 기층형태(基層形態)로 받쳐져 있어야 한다.

불투수층은 물을 통과시키는 정도에 따라서 난투수층(難透水層)과 비투수층(非透水層)으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는데, 점토층이나 뻘층과 같이 물을 조금이라도 통과시키는 지층은 난투수층이라 하고 균열(龜裂)이 없는 암석층과 같이 전혀 물을 통과시키지 않는 지층을 비투수층이라고 한다.

지하수는 불투수층 위의 투수층 내에서 고여 있거나 유동하고 있으며, 지하수로 포화되어 있거나 유동하고 있는 투수층을 지하수층 또는 대수층((帶水層)이라고 한다. 지하수로 포화되어 있는 부분을 포화대(飽和帶)라 하고, 그 상부층에 물로 포화되어 있지 않고 공기로 공극(空隙)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을 통기대(通氣帶)라고 하며, 지하수로 포화된 윗표면인 자유수면(自由水面)을 지하수면이라고 한다.

지하수층은 모래층·자갈층 및 모래·자갈로 구성된 충적층(沖積層)과 빙하시대에 퇴적, 형성된 홍적층(洪積層)이 되고, 암반층에 형성된 균열을 유동하는 암반대수층(巖盤帶水層)과 모암(母岩)이 풍화되어 이완된 입자 사이를 유동하는 풍화대층을 들 수 있다.

지하수는 충적층·홍적층과 제3기 지층 내에 포화되어 있는 지층수(地層水)와 암반의 균열 또는 동혈(洞穴)에 맥상(脈狀)으로 차서 이동하는 열하(裂罅) 또는 동혈수(洞穴水)로 분류하는데, 지층수는 자유면지하수와 피압면지하수(被壓面地下水)로 구분한다.

1개의 대수층이 불투수층 위에 놓여 있는 지하수면이 자유면을 이루고 있는 것을 자유면지하수라 하고, 대수층 아래와 위에 불투수층이나 난투수층이 겹쳐 호층(互層)으로 되어 있어 대수층이 압력을 받으면 지하수도 압력을 받게 되는 것을 피압면지하수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지하수라고 하면 순환수를 말하며 특수한 경우 지층이 퇴적될 당시에 들어가 있게 된 동생수(同生水) 또는 화석수(化石水), 암장(巖漿)에 기원을 둔 암장수(巖漿水) 또는 처녀수(處女水)도 있으나 이것들을 지하수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특수 지하수로는 자유면지하수의 일종으로 비교적 작은 면적의 불투수층 위에 존재하고 있는 독립된 소규모의 지하수체인 주수(宙水)가 있고, 하상(河床)이 모래자갈층으로 구성되어 삼투성이 크고 지하수위가 얕을 때 하천수가 전부 삼투하여 지하를 흐르는 복류수(伏流水)가 있다. 지하수가 지표면하에 수직으로 분포된 상태는 포화대와 통기대(通氣帶)로 구분한다.

통기대에는 공기와 물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 부분의 물도 지하수로 취급된다. 상부로부터 토양수대(土壤水帶)·중간대(中間帶)·모세관대(毛細管帶)로 구분되고 이 대들에 들어 있는 물은 토양수, 중력 또는 중간부유수(中間浮游水)와 모세관수로 분류되며 그 이하 지하수면이 형성되는 포화대내에 부존하고 있는 물은 자유면지하수로 구분한다.

지구상에는 바닷물을 제외한 연수(軟水)의 3% 정도만이 하천이나 호소(湖沼)의 형태로 지표에 존재하고 97%에 해당하는 100억㎦의 막대한 수량이 지하수형태로 지하에 부존되어 있다.

우리 나라(남한)는 연평균 강우량 1,274㎜가 국토면적 9만9000㎢에 강우되어 수자원 총량인 1,267억㎥의 막대한 수량을 이루게 된다. 이 중의 55%에 해당하는 697억㎥는 다시 하천으로 유출되고, 45%에 해당하는 570억㎥는 증발로 손실된다. 이 하천유출량 가운데 일부가 침투하여 지하수로 함양(涵養)되어 지하수 형태로 잔류, 부존하게 되며 그 이용량은 2%에 해당하는 26억㎥이다.

지하수 부존성의 순위는 충적층의 경우 모래층·모래자갈층·이질(泥質)모래층의 순서로 나타나며, 지형별로는 선상지(扇狀地)·범람원하안평야·해안평야·곡간평야(谷間平野)·구릉지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강우량에 따라 지하수위가 다소 변동될 경우의 채수량(採水量) 증감폭은 15% 내외이다.

암반층의 경우 지하수 부존성이 가장 높은 순서는 화산암류·퇴적암류·변성암류와 화산암류를 제외한 화성암류의 순으로 나타나며, 특히 제주도와 강원도 철원부근 화산암류 분출지역에는 분출된 성층면(成層面)과 주상절리(柱狀節理)에 다량의 지하수가 부존되어 있다.

또한, 퇴적암지역 중 석회암 공동(空洞)과 사암 및 셰일류의 층리(層理)와 부대구조대(附帶構造帶)에 지하수가 부존되어 있으며, 화성암류와 변성암류에는 절리·균열·파쇄대(破碎帶) 등에 주로 부존되고 있다.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지하수를 이용한 못을 축조한 사실이 ≪삼국사기≫·≪고려사절요≫에 많이 기록되어 있다.

1278년 (충렬왕 4)에서 1287년 사이에 몽고군이 지금의 마산에 야전군 식수용 우물을 개발하였는데 현재까지도 그 유래가 남아 있으며, 조선 세종 때 목천(木川)·청주 등지에 초수(椒水)를 이용한 사실이 ≪세종실록≫에 나온다.

또한, 1455년(세조 1) 의정부가 병조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진 지하수개발에 관한 안(案)이 충청도·전라도·경상도 도체찰사(都體察使) 정약(鄭若)의 계본(啓本)내에 수록되어 있는데, 전라도 순천부역(順天府域)에 6정(井)의 인지(人池:인공 연못)를 비롯하여 40여 부현읍성(府縣邑城)에 적게는 1개, 많게는 10여 개의 우물 또는 샘을 개발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기록들은 농경국인 우리 나라에서 일찍부터 지하수를 개발하여 농업용수로 사용하여왔음을 보여 준다. 근대에 와서는 일제강점기인 1936년 중앙시험소(中央試驗所)에서 공업용수개발을 목적으로 수개 소의 시추조사를 한 일이 있다.

1940∼1944년에는 미곡증산을 위한 농업용 지하수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하고 영등포·수원·춘천 등지에 지하수 조사를 시행하던 중 광복이 되어 중단하였으며, 그 기간중에 경기도 평택·안성지역의 수십 개소에 타설관정(打設管井) 개발을 하였다.

정부수립 후 서부경남지역한해대책으로 농수산부에서 주관하여 1964년부터 농업용 지하수 조사에 착수하였고, 1965년에는 이스라엘 지하수개발 전문가를 초청하여 국내 지하수개발 가능성을 타진하고, 전천후 농업용수개발의 일환으로 7만 485㏊에 대한 지하수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하여 토지개량조합연합회에 수자원개발부를 신설, 조사와 개발을 하게 하였다.

한편, 1968년 영호남지역에 있었던 대한해(大旱害)를 계기로 지하수개발단을 발족하고 농업용수개발계획을 수립, 한해대책을 실시하다가 1969년 지하수 전담공사인 지하수개발공사를 창설하여 지하수기계관정사업을 전담하게 하고 인력관정(人力管井)과 타설관정사업을 시·군에서 담당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지하수개발사업의 절정을 이룬 것이었다.

1970년에는 대통령 특별지시로 농업진흥공사에서 봉천수(奉天水)와 용출수(湧出水)만을 사용하는 제주도 지하수개발가능성 조사를 실시한 결과 풍부한 지하수부존성을 확인하고 개발에 착수하여 제주도 전역의 생활용수 및 농업용수를 해결하게 하였다. 지하수는 보조용수로서의 위치로부터 주용수원으로 개발대상이 발전되었다.

한해대책으로서 지표수개발이 어려운 지역이나 한해상습지역·고지대·천수답지역에 암반지하수를 개발하여 농업용수 주수원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채소 등 원예작물용수로 밭관개에도 이용하게 된 것이다.

1950년대 이전에는 인력을 이용하여 굴착, 철관을 타설하였으나, 1960년대 이후에는 회전식 기계굴착방법을 사용하여 충적층이나 암반의 심도(深度) 10∼100m, 구경(口徑) 50∼75㎜ 이상 되는 기계관정을 굴착한 뒤 철관 또는 P.V.C. 파이프와 스트레이너(strainar)를 삽입하고 공벽과 우물자재 사이에 잔자갈을 충전하여 사용하는 기계관정을 주로 개발하였다.

1983년 이후에는 풍화대가 발달된 산 계곡부나 전작(田作)지대에서는 심도 20m 미만, 구경 50∼70㎜의 소형관정을 굴착하여 약 50㎥/1일 정도의 지하수를 양수(揚水)하는 간이지하수개발도 시행된 바 있다.

1980년 이전의 지하수개발은 주로 충적층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1980년대 이후에는 지하수개발 대상층이 암반층으로 변하면서 심도 200m 내외의 암반지하수개발공법으로 바뀌어졌고, 충적층지하수개발방법은 충적층·대수층의 대량양수를 목적으로 지름 3.5m 정도의 관정을 굴착하고 방사상집수정개발공법(放射狀集水井開發工法)을 개발, 이용하게 되었고, 지하수위 상승과 지하수 유출을 방지하는 지하댐공법을 발전시켜 대량취수하는 방법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대량취수와 개발에 정확성을 기하기 위하여 지하수 부존상태를 확인하여 그림으로 보여주는 수맥조사사업(水脈調査事業)이 전국을 대상으로 병행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 지하수개발 실적은 광복 이전 중앙시험소에서 공업용수개발을 목적으로 수 개공의 시추조사를 한 것과 경기도 평택과 안성지역 평야부 수십 개소에 타설관정개발을 한 사실은 있으나 정확한 지역과 공수(孔數:시추공의 수)에 대한 기록은 없다.

지하수의 본격적인 조사와 개발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와서 농업용수 개발을 목적으로 전국에 지하수 조사와 전천후 농업용수 개발을 실시하고 항구적 한해대책 및 한해상습지역의 용수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많은 기계관정, 소형관정, 방사상 수집정 및 지하댐 등을 개발하였다.

산업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1970년대 이후부터 농업용수에서 공업용 지하수개발로 변모되면서 많은 공업용수가 민간인 차원에서 개발되어 1976년 이후 서울특별시를 비롯한 6대 도시에 지하수가 비상용수로 개발되었고, 중소도시에도 생활용수를 위한 지하수개발이 실시되었다.

지하수는 지표수에 비하여 개발비용이 저렴하고 저수지와 달리 적은 면적에서 많은 물을 생산할 수 있으므로 토지의 궤폐면적(潰廢面積)이 적고 수질의 오염이 적으며 안정된 수량을 단기간 공사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을 가지고 있으나, 수온이 15℃ 내외로 비교적 낮은 편이어서 벼 재배에는 약간 낮은 수온이고 양수기를 이용하는 불편이 따르고 있다.

반면 밭 관개에 있어서는 대부분 작물의 수온이 오히려 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목장 등의 초지조성용수로는 가장 적당한 물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송어나 열목어와 같은 냉한성 어족 양어에는 수온이 낮고 일정한 지하수가 적당한 물로 이용되고 있다.

공업용수로도 일정한 수온과 수량 및 수질을 가지고 있는 지하수는 많은 수량을 필요로 하거나 냉각용으로 사용하는 공장에는 가장 적당한 물이어서 근래에는 대부분 지하수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지하수는 협소한 관정에서 양수기를 설치하여 많은 수량을 양수하여야 하기 때문에 그 관리를 철저히 하여야 한다.

지하수가 산출되는 양에 맞추어 알맞은 양수기를 설치하여 적당한 양을 양수하여야 하고 관정 속으로 들어오는 모래 등의 슬라임(slime) 충전이나 물이 유입되는 스트레이너가 막힐 경우 주기적으로 공기세척방법인 서징(surging)으로 소제를 실시하여야 하며 양수기도 수시로 점검하여야 한다.

지하수는 관정마다 관리책임자를 지정하여 적당한 양의 지하수를 양수하도록 하며, 항시 수량·수질 및 수온의 변화에 유의하도록 하는 등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우리 나라 지하수자원은 연간 평균 강우되는 수자원총량 1,267억㎥의 18%에 해당하는 약 205억㎥의 물이 지하로 계속 스며들고 있으며, 전국토 지층내에 부존되어 있는 지하수 포장능력은 총 3,870억㎥로 추산되고, 이 중 약 787억㎥가 가용(可用)지하수량으로 계산된다.

전국 지하수 이용량은 26억㎥으로 수자원총량의 2.0%, 가용지하수 포장량의 3.3%에 불과한 양으로 현재 개발 이용하고 있는 지하수는 그 일부분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의 막대한 물이 지층내에 부존되어 있다.

물의 수요는 산업발전에 따라 점증하고 있어 이를 충족하기 위한 지하수 개발의 비중이 점차 증대되고 있다. 또한, 지하수원공(地下水源工)은 충적층 기계관정 외에 암반지하수개발과 방사상집수정 및 지하댐 등 개발공정과 규모가 다양화되었고 채수(採水)규모도 수십㎥ 규모의 소형관정으로부터 지하댐이나 방사상집수정과 같이 개소당 수천㎥에 달하는 시설물로 발전되고 있으며 양수시설도 전동화하는 등 유지관리체계의 현대화로 관리비가 절감되고 있다.

한발이 심하고 대수층 발달이 빈약한 농지에는 농민이 간편하게 개발, 활용할 수 있도록 소형 착정기(鑿井機)를 보급하고 농민자력개발이 가능하도록 개발공법을 다양화하여 개발수량확보나 개발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개발 가능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지하수개발』(민병섭 외, 형설출판사, 1980)
『지하수학개론』(한정상, 형설출판사, 1981)
『지하수실적』(농업진흥공사, 1965∼1985)
『수자원연보』(건설부, 1985)
『지하수개발사』(농수산부·농업진흥공사, 1985)
『지하수조사연보』(건교부, 1997)
『수자원편람』(건교부·한국수자원공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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