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은 좌평(佐平)이었다. 478년(삼근왕 2) 좌평 해구(解仇)와 은솔(恩率) 연신(燕信) 등이 대두성(大豆城)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키자, 삼근왕의 명령을 받들어 군사 2,000명을 거느리고 진압하려 하였지만 이기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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