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착·과감하고 큰 지략이 있어 당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393년(아신왕 2) 1월 좌장(左將)에 임명되어 군사(軍事)를 통할하였다.
그 해 8월에는 고구려에 빼앗긴 관미성(關彌城 : 위치비정에 대하여서는 臨津江口說·禮成江口說·喬桐島說 등이 있음)·석현성(石峴城 : 지금의 경기도 개풍군으로 추정됨) 등의 탈환을 위하여 관미성을 포위공격하고 분전하였으나, 고구려군의 완강한 저항과 군량조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 철군하였다.
395년 다시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패하(浿河 : 지금의 예성강) 유역에서 광개토왕의 반격을 받아 참패당하였다. 그렇지만 398년에는 병관좌평(兵官佐平)으로 승진하였다. 이렇듯 당시 왕비족으로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진씨족(眞氏族)의 한 사람으로서, 백제의 군사권을 장악하고 대고구려전에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