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재정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던 중앙관청이다. 651년(진덕여왕 5)집사부(執事部)가 설치될 때 품주(稟主)에서 분리, 독립되었다. 소속관원으로는 영(令)·경(卿)·대사(大舍)·사(史) 등이 있었다.
장관인 영은 2인으로 관등은 대아찬(大阿飡)에서 대각간(大角干)까지로 하였다. 차관인 경은 경덕왕 때 시랑(侍郎)으로 고쳤다가, 혜공왕 때 다시 환원하였으며, 정원은 3인인데, 651년 2인이 두어졌고 675년(문무왕 15) 1인을 더하였다.
관등은 아찬(阿飡)에서 □찬까지였다. 3등관인 대사는 진덕여왕이 설치하였으며, 경덕왕 때 낭중(郎中)으로 고쳤다가 혜공왕 때 환원하였다. 정원은 2인이고, 관등은 사지(舍知)에서 나마(奈麻)까지였다.
4등관인 조사지는 699년(효소왕 8)에 두어졌으며, 경덕왕 때 사창(司倉)으로 고쳤다가, 혜공왕 때 환원하였다. 정원은 1인이고, 관등은 사지에서 대사까지였다.
그리고 5등관인 사는 처음에 8인이었다가, 671년(문무왕 11)에 3인, 그 이듬해에 7인, 699년(효소왕 8)에 1인, 752년(경덕왕 11)에 3인, 그리고 혜공왕 때 8인이 늘어나 정원이 30인이나 되었다. 이것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와 재정사무가 매우 복잡하여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