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익 ()

목차
불교
인물
조선후기 표충사 도총섭, 영남의 표충사 도총섭, 전라도 내도총섭 등을 역임한 승려.
이칭
용운(龍雲)
이칭
경암(敬庵)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13년(순조 13)
사망 연도
1888년(고종 25) 5월 15일
출생지
전라남도 곡성
주요 관직
표충사 도총섭|영남의 표충사 도총섭|전라도 내도총섭
목차
정의
조선후기 표충사 도총섭, 영남의 표충사 도총섭, 전라도 내도총섭 등을 역임한 승려.
내용

선승. 성은 이씨(李氏). 호는 용운(龍雲), 실호(室號)는 경암(敬庵). 전라남도 곡성 출신.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내외의 전적을 두루 섭렵하였다. 16세 때 조계산 송광사에서 남일(南一)을 은사로 하여 삭발하였다.

기봉(奇峯)에게 구족계를 받았고, 제봉(霽峯)에게 선을 배웠으며, 27세 때 보봉(寶峯)의 법을 이었다. 또한, 서법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전주 사람인 이삼만(李三晩)에게 필법을 익혀 유학자들에게도 명성을 날렸다. 그 뒤 선암사(仙巖寺)의 한성(翰醒)에게 경학을 배우고 인파(仁坡)에게 선의 이치를 묻기도 하였다.

학업이 성취된 뒤 주로 사찰의 중건에 힘을 기울였다. 서울 봉은사의 간경(刊經), 해인사의 인경(印經), 통도사의 계단(戒壇), 태고사(太古寺)의 중수, 강원도 정선정암사(淨巖寺) 석탑, 경기도 양주회암사(檜巖寺) 및 송광사의 중창에 화주승(化主僧)으로서 활동하였다.

또, 1860년지봉(智峯)과 함께 해남의 표충사(表忠祠)를 중수하고, 전주 송광사 대법당의 삼존불을 개금(改金)하였다. 그 뒤 보성 대원사(大原寺), 곡성 도림사(道林寺)의 길상암(吉祥庵)·나한전(羅漢殿)·천태암(天台庵), 남원의 백장암(百丈庵), 금산사의 대법당, 송광사의 용화전(龍華殿)·보제루(普濟樓)·도성당(道成堂) 등을 중수하여 사찰을 장엄하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리하여 호남의 표충사 도총섭(都摠攝), 영남의 표충사 도총섭, 전라도 내도총섭의 직위가 제수되었다. 1888년 5월 15일 법랍 61세로 입적하였으며, 판서(判書)로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동사열전(東師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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