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 성은 이씨(李氏). 호는 용운(龍雲), 실호(室號)는 경암(敬庵). 전라남도 곡성 출신.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내외의 전적을 두루 섭렵하였다. 16세 때 조계산 송광사에서 남일(南一)을 은사로 하여 삭발하였다.
기봉(奇峯)에게 구족계를 받았고, 제봉(霽峯)에게 선을 배웠으며, 27세 때 보봉(寶峯)의 법을 이었다. 또한, 서법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전주 사람인 이삼만(李三晩)에게 필법을 익혀 유학자들에게도 명성을 날렸다. 그 뒤 선암사(仙巖寺)의 한성(翰醒)에게 경학을 배우고 인파(仁坡)에게 선의 이치를 묻기도 하였다.
학업이 성취된 뒤 주로 사찰의 중건에 힘을 기울였다. 서울 봉은사의 간경(刊經), 해인사의 인경(印經), 통도사의 계단(戒壇), 태고사(太古寺)의 중수, 강원도 정선정암사(淨巖寺) 석탑, 경기도 양주회암사(檜巖寺) 및 송광사의 중창에 화주승(化主僧)으로서 활동하였다.
또, 1860년지봉(智峯)과 함께 해남의 표충사(表忠祠)를 중수하고, 전주 송광사 대법당의 삼존불을 개금(改金)하였다. 그 뒤 보성 대원사(大原寺), 곡성 도림사(道林寺)의 길상암(吉祥庵)·나한전(羅漢殿)·천태암(天台庵), 남원의 백장암(百丈庵), 금산사의 대법당, 송광사의 용화전(龍華殿)·보제루(普濟樓)·도성당(道成堂) 등을 중수하여 사찰을 장엄하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리하여 호남의 표충사 도총섭(都摠攝), 영남의 표충사 도총섭, 전라도 내도총섭의 직위가 제수되었다. 1888년 5월 15일 법랍 61세로 입적하였으며, 판서(判書)로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