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군위 출생. 군위공립보통학교를 거쳐 서울 양정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1928년에 서울신학대학 전신인 경성성서학원을 졸업하였다.
조치원교회 전도사를 시작으로 일본 동경교회 주임목사, 경주교회·부산교회·삼천포교회 등 각지를 돌아다니며 전교활동을 하였다.
목회생활 중 여러 차례 일본경찰에 의해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는데, 1940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완강히 거부하다가 수감되었으며, 이보다 앞서 6·10만세사건에 가담하여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바도 있다. 1943년 5월에는 성결교회 교역자 일제검속으로 대구감옥에서 고초를 겪다가 광복으로 출감하였다.
광복과 더불어 기독교 대한성결교회 총회의장에 피선되고 서울신학대학 이사를 겸하면서 성결교회의 발전을 위하여 헌신하는 한편, 목포교회·천안교회·봉산교회·통영교회 등에서 시무하여 많은 교회를 개척하였다. 1953년에 십자군전도대장, 1957년에는 희년기념관 관장으로 전도생활에만 전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