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천여는 조선 후기 천은사 「신중도」, 해인사 「산신도」, 장안사 「석가모니불도」 등을 그린 화가로 승려이다. 19세기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승려화가로 당호는 금암당이다. 1794년 전라도 나주에서 태어나 17세에 구족계를 받고 이때부터 도일화사로부터 불화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1810년부터 보조화사로 출발하여 전라도 일대의 불화를 제작하였다. 1845년부터 전라도 이외에도 경상도 지역의 불화를 다수 제작하였다. 현재 37건의 불화가 알려져 있다. 1878년 천여 입적 후 약 40년이 지나 쓰여진 「고종문대덕금암대선사전」이라는 전기가 남아 있다.
정의
조선후기 천은사 「신중도」, 해인사 「산신도」, 장안사 「석가모니불도」 등을 그린 화가. 승려.
개설
생애
활동사항
천여의 화업 활동은 크게 4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번째 시기는 1810년부터 약 20년 간으로, 주로 보조화사로서 불화를 제작한 시기이다. 이 시기의 작품은 남아 있는 것이 적지만, 1822년에 제작된 흥국사 도솔암 〈신중도〉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스승인 도일이 그린 불화의 밑그림을 그대로 사용하여 제작한 것이다.
두번째 시기는 1830년부터 약 15년 간으로, 이 시기부터 수화승으로 활동하며 많은 제자들과 함께 전라도 일대의 불화를 제작하였다. 이 시기 대표적인 불화로 그가 단독으로 제작한 해인사 〈산신도〉(1831)와 선암사 대승암 〈지장보살도〉(1841), 천은사 〈신중도〉(1833)가 있다. 이 시기에는 진채와 함께 수묵·담채 기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세번째 시기는 1845년부터 약 15년간으로, 화승으로서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이 시기에는 전라도 이외에 경상도 지역의 불화도 다수 제작하였다. 그의 대표작들이라 할 수 있는 완숙한 기량의 작품들이 이 시기에 제작되었는데, 선암사 선조암 〈아미타불도〉(1856), 선암사 지장전 〈지장보살도〉(1849), 장안사 대웅전 〈석가모니불도〉(1856) 등이 있다.
이후 말년까지가 네번째 시기인데, 그는 노년에 이르러서도 붓을 놓지 않고 꾸준히 불화를 제작하였다. 이 시기에 제작한 작품 중 붉은 바탕에 그린 홍탱이 여러 점 있다.
천여의 맥을 이은 화승으로는 일운(一芸, 日雲, 1841∼1844년 활동)과 태원(太原, 1842∼1847년 활동)이 알려져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고종문대덕금암대선사전(故宗門大德錦巖大禪師傳)」(猊雲散人(崔東植) 撰, 『朝鮮佛敎叢報』 8, 1918)
- 『한국의 불화 화기집(畫記集)』(고경스님 감수, 송천스님·이종수·허상호·김정민 편저, 성보문화재연구원, 2011)
- 「금암당 천여: 붓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완성한 깨달음의 세계」(김정희, 『한국의 미술가』, 사회평론, 2006)
- 「조선후기 화승 연구 1: 금암당 천여」(김정희, 『성곡논총』 29-3,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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