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경북청년총연맹위원장이었던 최해청(崔海淸)이 독립의 길은 배움에 있다고 생각하여 1948년 1월부터 대중강좌를 개최한 것이 계기가 되어, 40여 명의 동지가 뜻을 모아 대구야간대학(大邱夜間大學) 기성회를 조직하고 장인환(張仁煥)을 회장으로 선임하였다.
같은 해 9월 대구문리과전문학원으로 인가를 받고 법학과·문학과·이과 180명의 학생을 모집, 같은 해 11월 종로 임시교사에서 개교하였으며 초대원장에 최해청이 취임하였다. 1950년 3월 포정동으로 교사를 이전하고 4월에 청구대학으로 개편하여 이사장에 정종수(鄭宗壽), 학장에 최해청이 취임하였다.
1953년 주간부의 설치로 주·야간에 각각 문학과·법학과·토목공학과·건축공학과를 두었으며, 학생정원은 1,280명이었다. 같은 해에 제1회 졸업생 49명을 배출하고 1955년문화동으로 이전하였으며, 1960년에는 효목동에 공학관을 준공하였다.
1961년 대학원을 설치한 데 이어 1962년에 병설실업초급대학, 1963년 병설공업고등전문학교를 설립하였다. 1964년에는 대학본부를 30여만 평의 효목동 교사로 이전하여 대학발전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민족과 국가의 장래를 위하여 독립과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는 전통을 심으며, 학문의 자유로운 발전, 나아가 향토 및 민족과 사회에 대한 유기적 관련을 인식하고 교수·학생간의 정신적 교류 등을 건학의 정신으로 삼았다.
부설연구소로는 신라·가야문화연구소를 비롯하여 국어연구소·국민소득분석연구소·낙동강수자원개발연구소·수리실험소·건축재료연구소·행정연구소·경영문제연구소 등이 있었다.
1967년까지 총 14회 3,45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같은 해 12월 대구대학(大邱大學)과 통합되면서 학교법인 영남학원을 설립하여 영남대학교로 개편되었다. →영남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