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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문신 이돈영이 효령대군의 사적(事蹟)을 모아 기록한 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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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문신 이돈영이 효령대군의 사적(事蹟)을 모아 기록한 역사서.
내용

불분권 2책. 목활자본. 1929년 이광의(李光儀)가 간행하였다. 권두에 송규헌(宋奎憲)의 서문, 권말에 이광의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상하책에 대군제영시(大君題詠詩) 2수를 비롯하여 자설(字說)·원파기(源派記) 등 잡문 49편이 수록되어 있다. 「원파기」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의 계보를 기록한 것으로, 전주이씨의 시조는 신라시대의 사공 한(司空翰)이라고 말한 뒤 자기들의 중조(中祖)는 효령대군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효령대군의 휘(諱)는 보(補)이며, 전주의 이름은 시대에 따라 변천되어왔는데, 완산(完山)·전주·안남(安南)·순의(順義) 등으로 쓰여졌다고 설명하였다.

「희우정흥폐사적(喜雨亭興廢事蹟)」은 희우정의 창건연혁을 기록한 것이다. 1425년(세종 7) 세종이 서교(西郊)에 나가 농사 짓는 것을 돌아보다가 들판에 곡식이 무성한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고, 효령대군이 새로 지은 별장이 있어 그곳에 올라갔을 때 마침 단비가 와서 곡식이 춤을 추는듯한 것을 보고 그 이름을 희우정이라 지었다고 기록하였다.

행장과 유사는 대군의 일대기이며, 「청건사소(請建祠疏)」는 청권사(淸權祠)를 지어 대군의 위패를 봉향하도록 허락해줄 것을 요청하는 글이다. 「연설(筵說)」은 경연(經筵)에서 강의 도중 청권사의 건설을 건의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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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권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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