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게는 『주역(周易)』을 해석하고 그 이치를 탐구하는 『주역』 해석학(解釋學)과 태극론(太極論), 음양론(陰陽論) 등 『주역』의 주요 원리와 사상을 탐구하는 역학 철학을 가리키지만, 넓게는 종교, 과학, 문예, 점술 등 다양한 방면에서 『주역』을 응용하는 응용 역학(應用易學)을 포괄한다.
역학(易學)의 주요 연구 대상인 『주역』은 중국 고대의 주요 전적 중 하나로, ‘이 세계의 모든 변화와 그 원리’를 담고 있는 고전으로 이해되어 왔다. 유교의 경전으로 편입된 이후 경학(經學)이 확립된 한(漢)대부터 근대 이전까지 동아시아에서 『주역』은 유교의 경전들 중에서도 으뜸가는 지위를 차지해 왔다. 후한(後漢)의 유학자 정현(鄭玄: 127~200)은 ‘역(易)’을 ‘변역(變易)’, ‘불역(不易)’, ‘이간(易簡)’의 세 가지 의미[三義]로 설명하였다.
이에 따르면 ‘변역’은 우주 만물의 변화, 즉 우주 자연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항상 변화한다는 뜻이고, ‘불역’은 그 변화 속의 불변의 이치, 즉 우주 자연과 모든 존재는 항상 변화하지만 그 변화 속에는 변치 않는 이치, 불변의 법칙이 있다는 뜻이며, ‘이간’은 그 이치의 간단함, 즉 그 이치는 우리 인간이 알기 쉽고 따르기 쉽다는 뜻이다.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은 다양한 방법의 『주역』 연구를 통해 우주 만물의 변화 속에 드러나는 간단명료한 불변의 이치를 밝히고자 하였는데, 이러한 연구 전통을 크게 ‘역학’으로 묶을 수 있다. 그러한 역학의 전통이 2,000년 이상 축적되어 동아시아의 ‘역학사(易學史)’를 구성한다.
『주역』은 ‘점서(占筮)로서의 역(易)’과 ‘의리(義理)로서의 역(易)’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지닌다. ‘점서(占筮)’란 서책(筮策)을 활용하는 『주역』의 점을 가리키는 말로, ‘점서로서의 역’은 『주역』의 점술적인 특성을 강조하는 용어이다. 이는 주로 본래 점치는 용도인 64괘의 괘효사와 연관된다. ‘의리(義理)’란 『주역』에 담긴 의미와 원리를 가리키는 말로, ‘의리로서의 역’은 『주역』의 철학적인 특성을 강조하는 용어이다. 이는 주로 공자의 저작으로 전해지는 십익(十翼)과 연관된다. 이와 같이 신비적인 성격의 ‘점서(占筮)’와 이성적인 성격의 ‘의리(義理)’라는 이질적인 두 성분이 『주역』에 공존하는데, 그중 어떠한 특성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역학의 전통 또한 크게 두 갈래로 갈라지게 된다.
역학의 전통은 통상 『주역』을 연구하는 관점이나 태도에 따라 크게 ‘상수역학(象數易學)’과 ‘의리역학(義理易學)’으로 구분한다. 간단히 말해 상수역학은 ‘점서로서의 역’을 중시하는 입장이고, 의리역학은 ‘의리로서의 역’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상수(象數)의 ‘상(象)’은 음효와 양효, 팔괘와 64괘의 상징 체계를 의미하고, ‘수(數)’는 음양 · 사상(四象) · 팔괘 ·64괘의 수, ‘천지지수(天地之數)’, ‘대연지수(大衍之數)’ 등 『주역』의 수리 체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상수는 점서법(占筮法)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상수역학은 점서와 연관된 상수의 연구를 중시하며 이를 통해 괘효사의 의미를 밝히고, 『주역』에 담긴 우주 만물의 원리와 법칙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에 비해 의리역학은 64괘의 괘효사와 십익에 담긴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함의의 해명을 중시하고, 『주역』의 상수적 요소들을 의리의 해명을 위한 부차적 수단으로만 활용한다. 역학사에서 상수역학과 의리역학은 서로 대립하며 양대 파벌을 형성하였다.
『사고전서총목제요(四庫全書總目提要)』에서는 ‘양파육종(兩派六宗)’으로 세분해 설명하는데, 점서를 중시한 선진 한대의 ‘점복종(占卜宗)’, 한대 경방(京房)과 초공(焦贛)의 ‘기상종(禨祥宗)’, 하도(河圖) · 낙서(洛書)를 중시한 북송대 진단(陳摶: 867?989?)과 소옹(邵雍: 10121077)의 ‘조화종(造化宗)’을 대표적인 상수역학으로 분류한다. 반면 한대의 상수역학적 요소들을 배척하고 도가의 사상으로 『주역』을 해설한 왕필(王弼: 226249)의 ‘노장종(老莊宗)’, 『주역』의 유가적 의리를 천명한 북송대 호원(胡瑗: 9931059)과 정이(程頤: 10331107)의 ‘유리종(儒理宗)’, 『주역』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유가의 의리를 설명한 송대 이광(李光: 10781159)과 양만리(楊萬里: 1127~1206)의 ‘사사종(史事宗)’을 대표적인 의리역학으로 분류한다.
현재 의리역학과 상수역학은 한 학자의 역학 사상이나 역학 저작의 성격을 규정짓는 범주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실제 역학 사상의 특징을 간단하게 드러내거나 파악하는 데 용이한 개념이다. 그러나 주희(朱熹: 1130~1200) 이후 많은 학자들이 상수와 의리를 모두 『주역』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받아들이고 양자의 조화를 도모하였다. 따라서 송대 이후에는 현저한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리역학과 상수역학의 이분법적 구분에 들어맞지 않는 예가 상당히 존재한다. 특히 주희의 역학을 주로 계승하고 발전시킨 조선의 역학사에서 의리역학과 상수역학은 절대적인 범주라기보다는 상대적인 범주로 이해하는 것이 온당하다.
선천역(先天易)과 후천역(後天易)은 북송의 소옹이 제창한 개념이다.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라는 용어는 본래 건괘(乾卦) 「문언전(文言傳)」에 나오는 말이지만, 소옹은 선천을 ‘인간의 문명화 이전’, 후천을 ‘인간의 문명화 이후’의 의미로 해석하여 문명화의 주요 기준인 ‘ 문자’를 중심으로 『주역』을 문자화 이전의 역(易)인 ‘선천역’과 문자로 기록된 역인 ‘후천역’으로 새롭게 구분짓는다. 이를 바탕으로 문자로 기록된 『주역』 경문(經文)의 해석과 연구를 중시해 오던 이전의 역학 전통과 달리, 소옹은 문자화되기 이전의 선천역을 탐구하는 선천학을 주창하고 「복희팔괘차서도(伏羲八卦次序圖)」, 「복희팔괘방위도(伏羲八卦方位圖)」 등 선천역의 원리를 밝힌 선천도(先天圖)의 도상들을 새롭게 제시하였다.
「복희팔괘차서도」는 태극(太極)에서 양의(兩儀), 사상(四象)을 거쳐 팔괘로 분화되는 과정을 설명한 「계사상전(繫辭上傳)」의 ‘역유태극(易有太極)’ 장과, 복희라는 성인이 천지자연을 관찰하고 이를 팔괘로 형상화하였다는 「계사하전(繫辭下傳)」의 ‘앙관부찰(仰觀俯察)’ 고사를 바탕으로, 복희가 처음으로 획을 그어 팔괘를 완성한 차서를 도상화한 것이다. 소옹은 이를 통해 건일(乾一), 태이(兌二), 이삼(離三), 진사(震四), 손오(巽五), 감륙(坎六), 간칠(艮七), 곤팔(坤八)과 같이 새롭게 팔괘와 수를 연결시키는 한편 ‘일분위이(一分爲二)’, 소위 가일배법(加一倍法)의 논리를 통해 64괘의 생성은 물론 우주 만물의 분화를 설명하는 우주론을 전개하였다.
「복희팔괘방위도」는 「설괘전(說卦傳)」의 ‘천지정위(天地定位)’ 장을 복희가 팔괘의 방위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하여 건 · 곤 · 감 · 리를 중심으로 팔괘를 새롭게 배치한 도상이다. 소옹은 이를 통해 음과 양이 서로 맞물려 생장하고 소멸하는 변화, 즉 음양의 소식(消息)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그는 춘하추동, 회삭현망(晦朔弦望), 1년 중 밤낮의 길이 변화, 태양의 부등운동과 같은 우주 자연[天]의 변화는 물론 왕조의 흥망성쇠와 같은 인간 사회[人]의 변화를 관통하는 이치가 이 도상에 담겨 있다고 보았다. 그는 「설괘전」의 ‘제출호진(帝出乎震)’ 장에 근거해 감 · 리 · 진 · 태를 중심으로 팔괘를 배치한 기존의 방위도를 후천역의 원리가 담긴 「문왕팔괘방위도(文王八卦方位圖)」로 재해석함으로써, 복희의 도상들과 함께 각각 복희의 선천역과 문왕의 후천역을 대표하는 도상으로 정립시켰다.
소옹의 선천학과 관련 도상들을 계승한 주희(朱熹: 1130~1200)는 선천역을 다시 ‘천지자연의 역[天地自然之易]’과 ‘복희의 역[伏羲之易]’으로 구분하였다. ‘천지자연의 역’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형상화하기 이전 우주 만물의 변화 그 자체를 의미하고, ‘복희의 역’은 인간이 아직 문명화되지 않은 시기에 복희가 우주 만물의 변화를 처음으로 형상화한 괘와 효를 의미한다. 또한 그는 후천역을 다시 ‘문왕의 역[文王之易]’, ‘주공의 역[周公之易]’, ‘공자의 역[孔子之易]’으로 구분하였다. ‘문왕의 역’은 복희의 괘에 담긴 의미를 설명한 문왕의 ‘괘사(卦辭)’와 ‘64괘의 배열’을 가리키고, ‘주공의 역’은 문왕의 괘사를 바탕으로 효의 의미를 설명한 주공의 ‘효사(爻辭)’를 가리키며, ‘공자의 역’은 문왕의 괘사와 주공의 효사에 담긴 뜻을 해설한 공자의 ‘십익(十翼)’을 가리킨다. 이와 같이 복희, 문왕, 주공, 공자의 역을 구분하는 견해는 『주역』이 네 성인을 거쳐 완성되었다는 ‘사성설(四聖說)’을 바탕으로 소옹의 선천학을 발전시킨 것이다. 주희는 이를 바탕으로 본래 의도가 ‘점서’에 있는 문왕과 주공의 괘효사와 ‘의리’의 해설을 위주로 하는 공자의 십익을 명확히 구분하였고, 그러한 관점에서 『주역』을 해설한 것이 그의 『주역본의(周易本義)』이다. 이와 같이 소옹의 선천학은 주희의 계승과 발전을 통해 송대 이후 역학의 새로운 전통을 형성하였다.
『주역』의 핵심 사상은 음양론(陰陽論)이다. 우주 만물의 변화와 그 원리를 『주역』에서는 ‘음양’의 변화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음양론은 이 세계의 모든 것, 즉 우주 자연과 인간 사회의 모든 구성과 현상, 생성과 변화를 상반되면서 상호 의존적인 음과 양, 두 범주의 작동 원리로 설명하는 이론이다. 선진 시기의 여러 문헌들에 보이지만 『주역』에서 보다 명확하고 체계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한 번은 음하고 한 번은 양하며 이러한 변화가 순환반복되는 것이 우주만물의 질서이다”라고 해석되는 「계사상전」의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는 『주역』의 음양론을 간단명료하게 정식화한 문장이다. 밤과 낮이 순환반복하는 하루의 변화, 추운 계절과 따뜻한 계절이 순환반복하는 사계절의 변화와 같이 음과 양이 순환반복하는 우주 자연의 변화 속에서 음과 양의 만물이 결합하며 끊임없이 생성 · 소멸하고 흥망성쇠하는 이 세계의 모든 변화와 그러한 질서를 명제화한 것이 바로 ‘일음일양지위도’라 할 수 있다.
북송의 정이는 ‘일음일양’의 변화를 ‘변역’이라는 개념으로만 설명하였다. 주희는 여기에 소옹이 새롭게 제시한 ‘교역(交易)’이라는 개념을 더해, ‘일음일양’의 변화를 교역과 변역의 두 측면으로 구분해 정의하고자 하였다. 그는 ‘역’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변역으로, ‘유행(流行)’의 뜻이다. 다른 하나는 교역으로, ‘대대(對待)’의 뜻이다.” 또 음양에는 유행하는 측면도 있고 고정되어 있는 측면도 있다고 말한다. “「태극도설」의 ‘한 번은 움직이고 한 번은 정지하면서 서로의 뿌리가 된다[一動一靜 互爲其根]’는 말은 바로 유행하는 측면을 말한 것으로, 추위와 더위가 오고 가는 것이 여기에 속한다, ‘음과 양으로 나뉘어 양의가 세워졌다[分陰分陽, 兩儀立焉]’는 말은 바로 고정되어 있는 측면을 말한 것으로, 하늘과 땅, 위와 아래, 동서남북과 같은 것이 여기에 속한다”[이상 『주자어류』].
이와 같이 그는 음양의 변화를 교역과 변역으로 구분짓고 다양한 개념들로 바꿔가며 설명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대대와 유행이다. 먼저 ‘음양의 대대’란 우주 만물, 즉 이 세계와 뭇 사물들의 존립과 변화의 바탕에는 상반된 속성의 음과 양이 고정되어 존재하거나, 또는 존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상반되고 고정된 음과 양이 없다면 우주 만물의 존립과 변화 또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밤과 낮의 구분이 없고 하루가 모두 밤이나 낮이라면, 또는 따뜻한 계절과 추운 계절의 구분이 없고 일 년 내내 춥거나 따뜻하기만 한다면, 이 세상에 변화가 있을 수 없다. 또한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없고 만물이 모두 남성이거나 여성이라면 새 생명의 탄생이 있을 수 없듯이, 이 세상의 끊임없는 변화와 만물의 생장 소멸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음양의 대대’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음양의 유행’이란 음과 양의 변화가 서로 맞물려 진행되어 음이 성장할 때에는 양이 소멸하고, 양이 성장할 때에는 음이 소멸하는 등 이러한 음양의 생장과 소멸이 끊임없이 순환반복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교역과 변역’, ‘대대와 유행’을 통해 『주역』의 음양론을 새롭게 체계화한 주희의 역학 사상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음양의 대대와 유행을 역학의 근본 원리로 발전시켜 『주역』을 재해석한 명말 내지덕(來知德: 1525~1604)의 ‘착종설(錯綜說)’이 유명하다.
역학사는 역학의 특징과 변천에 따라 크게 선진 시대, 한대, 진당대, 송명대, 청대, 근현대로 구분할 수 있다. 선진(先秦)에서 한대 초기까지는 『주역』이 성립되고 역학이 시작된 초창기로, 괘효사의 ‘경(經)’과 십익의 ‘전(傳)’이 결합되어 현재 우리가 보는 『주역』의 형태가 완성되고 유교의 경전으로 확립된 시기이다. 이어지는 한대는 상수역학이 주류를 이루었던 시기로, 이 시기의 역학을 통상 ‘한역(漢易)’이라 부른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전한 시기의 맹희(孟喜)와 경방(京房), 후한 시기의 우번(虞翻: 164~223)을 들 수 있다. 맹희와 경방의 상수역학은 당시 유행하던 ‘천인상관론(天人相關論)’을 바탕으로 64괘를 역법(曆法)과 결합시켜 『주역』을 통해 우주 자연의 운행[天]과 인간 사회의 질서[人]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해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학설이 바로 ‘괘기론(卦氣論)’이다.
괘기론은 『주역』의 64괘 384효를 1년, 사계절, 12달, 24절기, 365일에 배당하여 우주 자연의 변화를 괘효를 통해 체계적으로 설명하고자 한 이론이다. 괘기의 기(氣)는 24절기(節氣)와 그 변화를 일으키는 음양의 기(氣)를 의미한다. 맹희는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진 · 태 · 리 · 감 4괘를 사계절을 대표하는 사정괘(四正卦)로 보고 사정괘의 24효가 각각 24절기를 대표하며 나머지 60괘 360효가 12달 365일을 주관한다고 보았다. 이에 따르면 하나의 괘가 6과 7/80일씩 주관하게 되는데, 이를 ‘육일칠분법(六日七分法)’이라 한다. 그는 60괘를 ①벽(辟)[임금], ②공(公), ③후(侯), ④경(卿), ⑤대부(大夫)의 5등급으로 12괘씩 분류하고 12개의 벽괘가 12달을 주관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음양효의 증감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12벽괘를 통해 음양 두 기(氣)의 소식(消息)에 따른 1년 12달의 기상 변화를 나타내고자 하였는데, 그러한 이유에서 벽괘를 소식괘(消息卦)라고도 부른다. 괘기설 중 12벽괘설은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우번은 맹희, 정현, 순상(荀爽: 128~190) 등 한대의 역학을 집대성하고 ‘방통설(旁通說)’과 ‘괘변설(卦變說)’ 등 상수역학의 다양한 해석 방법론을 창안한 인물로, 그의 역학은 후대의 상수역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으로 그의 괘변설은 괘의 변화에 대한 통일적인 원리를 마련해 64괘의 구성 체계를 설명하고 하나의 괘에서 다양한 괘를 도출해 괘효사를 해석하는 이론으로, 이를 계승한 학자들 중에는 주희와 정약용도 포함된다.
진당대는 왕필의 현학적 의리역학이 유행한 시기로 정리할 수 있다. 현학(玄學)은 위진 시기에 유행한 철학 사조로, 훈고에 치중하며 번쇄함을 낳았던 한대의 경학 전통에 반하여 추상적 원리에 의한 간명한 해석을 지향하였다. 왕필은 한대 상수역학의 번쇄한 해석 방법론을 배척하고 「단전(彖傳)」과 「상전(象傳)」에 입각해 괘효사에 숨어 있는 의리를 간명하게 밝히는 데 치중하였다. 그는 『주역』 해석에서 상징의 해석보다 의미의 이해를 강조하는 ‘득의망상론(得意忘象論)’, 하나의 주된 효가 해당 괘 전체의 의미를 대표한다는 ‘괘주론(卦主論)’, 초효와 상효는 음양 · 귀천(貴賤)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초상무위론(初上無位論)’ 등 다양한 의리역학적 해석 방법론을 창안하였는데, 이는 후대의 의리역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진(晉)의 한강백(韓康伯: 332380)은 왕필의 현학적 의리역학을 계승해 왕필이 해설하지 않은 십익을 주해하였고, 당(唐)의 공영달(孔穎達: 574648)은 왕필과 한강백의 주해를 표준으로 하는 『주역정의(周易正義)』를 저술하였다.
송대의 역학은 이전 시기의 ‘한역’과 구분지어 통상 ‘송역(宋易)’이라 부른다. 이 시기는 상수역학과 의리역학이 함께 발전하면서도 의리역학이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한 시기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중국 사상사에서 유학(儒學)의 일대 전환이 일어난 시기이다. 다양한 사조들의 신유학이 등장하였는데 이들 대부분은 『주역』의 사상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철학을 정립시켰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이기론(理氣論)을 바탕으로 유학의 심성론(心性論)과 수양론(修養論)을 새롭게 구축한 정이와 주희의 성리학(性理學)이다.
북송의 정이는 성리학을 바탕으로 『주역』을 새롭게 해석한 『이천역전(伊川易傳)』을 저술하였다. 그는 이기의 관계를 나타내는 ‘체용일원, 현미무간(體用一源 顯微無間)’의 명제로 이(理)와 상(象)의 관계를 정식화하고 은미한 의리의 해명을 강조하였다. 그는 『주역』의 핵심적 의리를 ‘생생지리(生生之理)’로 보고 이를 우주 만물에 공통된 생명 의지[生意]로 해석하였으며, 그러한 생명 의지를 계승하는 것이 선(善)이고, 최고의 선은 인(仁)으로 해석하였다. 유가적 의리를 해설한 그의 『이천역전』은 도가적 의리를 해설한 왕필의 『주역주(周易注)』와 더불어 의리역학의 쌍벽을 이룬다.
동시기에 주돈이(周敦頤: 10171073)는 「태극도설(太極圖說)」을 통해 『주역』의 우주론을 재구성하고 『주역』을 바탕으로 ‘ 성(誠)’ 사상을 전개하였다. 장재(張載: 10201077)는 『주역』을 바탕으로 태허(太虛)의 기일원론(氣一元論)을 주장하였으며, 소옹은 선천학을 주창하며 새로운 상수역학을 정립하였다. 남송의 주희는 북송의 선배 학자들의 역학을 집대성하면서 정이의 의리역학과 소옹의 상수역학을 중심으로 의리와 상수의 조화를 도모하였다. 또한 주희는 주돈이의 태극도, 소옹의 선천 · 후천도 외에도 하도 · 낙서를 『주역』의 원리가 담긴 도상으로 중시하였다. 송대에는 그와 같은 다양한 도상들을 통해 『주역』의 원리를 해설하는 학풍이 성행하였는데, 주희 이후 하나의 큰 흐름을 형성하였다. 그러한 역학 전통을 대표 도상인 하도 · 낙서에서 이름 따 ‘도서학(圖書學)’이라고 하는데, 송역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이다.
원 · 명대는 정주역학(程朱易學)이 주류를 이루었던 시기로, 송역의 성과들을 정리하고 부연한 것이 이 시기 역학의 주된 특징이다. 명나라 영락제(永樂帝)의 어명으로 호광(胡廣: 1369~1418) 등이 편찬한 『주역전의대전(周易傳義大全)』은 당시의 정주역학을 집대성한 저술로 유명하다. 이외에 ‘착종설(錯綜說)’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바탕으로 『주역』을 해석한 내지덕(來知德)의 『주역집주(周易集注)』는 명대를 대표하는 역학 저작으로 평가된다.
청대는 고증학(考證學)의 유행과 함께 다시 한역(漢易)의 부흥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호위(胡渭: 16331714), 혜동(惠棟: 16971758), 장혜언(張惠言: 17611802), 초순(焦循: 17631820) 등이 있는데, 그들은 성리학적 의리 해석이나 선천학과 같은 송역의 요소들을 비판하며 한역(漢易)의 복원을 통해 『주역』의 본의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이외에 자신의 기일원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주역』을 재해석한 왕부지(王夫之: 1619~1692)를 들 수 있다.
근현대의 역학은 서구의 근대적 연구 방법론의 도입으로 ‘의고(疑古)’적 연구가 유행하고, 『주역』 관련 출토 자료들의 등장으로 이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된 시기로 정리할 수 있다. 1920년대 말 고힐강(顧頡剛: 18931980)과 곽말약(郭沫若: 18921978) 등 ‘고사변파(古史辨派)’의 학자들은 『주역』의 저자와 성립에 대한 전근대 학자들의 학설을 철저히 의심하고 근대적 연구 방법론을 바탕으로 새롭게 규명하고자 하였다. 근래에는 중국에서 『주역』의 옛 형태나 『주역』과 연관된 자료들이 출토되기 시작하면서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다. 일례로 1978년 장정랑(張政烺)은 섬서(陝西) 지역에서 출토된 ‘주원복골(周原卜骨)’ 등 숫자 기호가 기록된 다양한 고대 자료들을 바탕으로 괘의 부호가 숫자 기호에서 기원하였다는 것을 밝혔다.
『주역』의 옛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는 출토 문헌들 중에는 1973년 호남성(湖南省) 장사시(長沙市)에서 발굴된 마왕퇴한묘(馬王堆漢墓) 백서본(帛書本) 『주역』과 1994년 홍콩의 골동품 시장에서 발견되어 현재 상해박물관(上海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는 초간본(楚簡本) 『주역』이 유명하다. 기원전 2세기 무렵의 마왕퇴한묘[3호묘]에서는 비단에 쓰여진 다량의 문헌들(帛書)이 출토되었는데, 『노자(老子)』[2종], 『황제사경(黃帝四經)』, 『오행(五行)』 등과 함께 『주역』이 발견되었다. 이 백서본 『주역』은 문제(文帝) 재위[BC 180~157] 초년 무렵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서본 『주역』 중 경문[괘, 괘명, 괘사, 효사]에서는 가차자(假借字)의 사용이 눈에 띄지만 내용은 현행본과 거의 동일하다. 효의 모양은 양효는 현행본과 동일하고 음효는 ‘┘└’로 되어 있다. 괘명에도 가차(假借)가 많은데, 예를 들어 건(乾)은 건(鍵), 리(履)는 예(禮)[중국 발음은 li로 같음], 진(震)은 진(辰), 구(姤)는 구(狗)로 되어 있다.
백서본 『주역』이 현행본과 가장 다른 점은 64괘의 배열 순서이다. 또한 백서본 『주역』은 괘효사의 ‘경(經)’과 6편의 ‘전(傳)’이 함께 발견되었다. ‘경’과 함께 한 비단에 기록된 「이삼자(二三子)」와 다른 비단에 같이 기록된 「계사(繫辭)」, 「역지의(易之義)」, 「요(要)」, 「목화(繆和)」, 「소력(昭力)」이 그것이다. 이중 현행본의 「계사전」과 유사한 내용이 「계사」와 「역지의」, 「요」에 보인다. 「계사」는 현행본 「계사전」의 대부분을 담고 있지만, 현행본과 같이 상하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서법과 긴밀히 연관된 ‘대연지수(大衍之數)’ 장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백서본의 ‘전’들은 대체로 『주역』을 통해 정치윤리적 의미를 설명하는 의리역학적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초간본(楚簡本) 『주역』은 전국 중기[BC 300년 전후] 초(楚) 지역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經)’의 일부만 발견되었고, ‘전(傳)’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효의 모양은 양효는 현행본과 동일하고 음효는 ‘┘└’로 되어 있다. 다양한 형태의 부호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의미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이러한 『주역』 관련 출토 문헌들과 역사 자료의 연구를 바탕으로 현재 학계에서는 『주역』의 괘효사인 ‘경(經)’은 괘의 배열 순서는 다르지만 전국 중기 무렵에 이미 현행본의 형태를 갖추었고, ‘전(傳)’은 전국 말기부터 다양한 역전(易傳)들이 지어지기 시작해 전한(前漢)의 무제(武帝) 재위 기간에 현행본의 십익의 형태를 대체로 갖추었을 것이라고 본다. 현재 중국에서는 『주역』 관련 자료들이 계속해서 출토되고 있고 이에 대한 연구 또한 축적되고 있어, 앞으로 『주역』의 기원과 유교화(儒敎化) 과정이 보다 명확하게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역』의 서법은 50개의 시책(蓍策)을 조작해 괘(掛)와 변효(變爻)를 구하고 이를 통해 점단(占斷)에 필요한 괘효사를 선택하는 방법으로 다른 말로 ‘설시구괘법(揲蓍求卦法)’이라고도 한다. 『주역』의 서법은 기본적으로 「계사상전」 ‘대연지수(大衍之數)’ 장의 ‘4영18변(四營十八變)’을 전거로 한다. ‘대연지수’ 장은 서법의 의식에 우주의 운행과 만물의 생성이라는 우주론적 의미를 부여하려 한 것으로, 이에 따르면 1변을 구성하는 4영은 다음과 같다. 제1영은 50개의 시책에서 태극을 상징하는 1개의 시책을 제외한 49개의 시책을 둘로 나누는 ‘분이(分二)’의 과정으로, 이는 천지분화(天地分化)를 상징한다. 제2영은 1개의 시책을 거는 ‘괘일(掛一)’의 과정으로, 그 하나는 인(人)을 나타내 천 · 지 · 인 삼재(三才)의 완성을 상징한다. 제3영은 넷씩 세는 ‘설사(揲四)’의 과정으로, 이는 사계절을 상징한다. 제4영은 나머지를 돌려보내 끼우는 ‘귀기(歸奇)’의 과정으로, 이는 윤달을 상징한다. 이러한 네 과정[4영]을 3번[3변] 반복해 효 하나의 음양노소가 결정된다. 이에 괘의 여섯 효를 구하기 위해서는 네 과정[4영]을 총 18번[18변] 반복해야 한다. 이러한 4영18변의 절차를 통해 괘와 변효를 도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길흉판단에 필요한 괘효사를 선택하는 것이 『주역』 서법의 기본과정이다. 그러나 ‘대연지수’ 장에 기술된 서법 과정은 매우 간략하기에, 이를 바탕으로 4영18변을 보다 구체적으로 재현하려 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오래도록 정통 서법으로 여겨져 온 주희의 서법은 기존의 서법을 수정 보완해 4영18변의 과정을 보다 충실히 재현하고자 한 것이다. 주희 서법의 4영1변의 과정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50개의 시책에서 임의로 하나를 뽑아 두고 나머지 49개를 사용한다. ② [1영 분이] 49개의 시책을 임의로 둘로 나눈다. ③ [2영 괘일] 오른쪽 시책에서 임의로 하나를 뽑아 왼손 손가락 사이에 끼운다. ④ [3영 설사] 왼쪽 시책에서 넷씩 세어 덜어 내고 마지막에 남는 시책을 구한다. ⑤ [4영 귀기] 마지막에 남는 14개의 시책을 왼손 손가락 사이에 끼운다. ⑥ [3영 반복] 오른쪽 시책에서 넷씩 덜어 내고 마지막에 남는 시책을 구한다. ⑦ [4영 반복] 마지막에 남는 14개의 시책을 왼손 손가락 사이에 끼운다. ⑧ [1변 완료] 왼손 손가락에 끼운 시책의 개수를 합산하여 그 수를 구한다.
위의 ③괘일의 단계에서 왼손 손가락 사이에 끼운 1개의 시책을 ‘괘(掛)’라고 한다. ‘괘’ 1책을 끼우고 양쪽에 남는 시책은 총 48개가 되므로, 왼쪽에서 넷씩 덜어 내 1개가 남으면 오른쪽에서는 3개가 남고, 왼쪽에서 2개가 남으면 오른쪽에서도 2개가 남고, 왼쪽에서 3개가 남으면 오른쪽에서 1개가 남고, 왼쪽에서 4개가 남으면 오른쪽에서도 4개가 남게 된다. 이렇게 양쪽에서 넷씩 덜어 내고 남아 왼손 손가락 사이에 끼운 시책을 ‘륵(扐)’이라고 한다. 1변 완료 후 왼손 손가락에 끼운 시책의 개수를 합산하면 5 아니면 9가 되고, 양쪽에서 덜어 낸 시책[손가락에 끼우지 않은 나머지]의 개수는 44[49-5] 아니면 40[49-9]이 된다. 전자를 ‘괘륵지수(掛扐之數)’, 후자를 ‘과설지수(過揲之數)’라고 한다. 제2변은, 제1변 완료 후 양쪽에서 덜어 낸 44 또는 40개의 시책으로 ②의 단계부터 4영을 반복한다. 그 결과 괘륵지수는 4 또는 8이 되며, 과설지수는 40[44-4], 36[44-8과 40-4], 32[40-8]가 된다. 제3변은, 제2변 완료 후 양쪽에서 덜어 낸 40 또는 36 또는 32개의 시책으로 ②의 단계부터 4영을 반복한다. 그 결과 괘륵지수는 4 또는 8이 되며, 과설지수는 36[40-4], 32[40-8과 36-4], 28[36-8과 32-4], 24[32-8]가 된다.
이와 같이 3변 완료 후 각 변에서 도출된 세 괘륵지수를 기준으로 한 효의 음양노소를 판별한다. 괘륵지수 중 5와 4를 기(奇) 또는 소(少)라 하고 9와 8을 우(偶) 또는 다(多)라 하여 기우를 구분하고, 세 괘륵지수가 모두 기이면[三奇: 5·4·4] 노양, 하나가 우, 나머지 둘이 기이면[兩奇一偶: 5·4·8, 5·8·4, 9·4·4] 소음, 하나가 기, 나머지 둘이 우이면[兩偶一奇: 5·8·8, 9·4·8, 9·8·4] 소양, 모두 우이면[三偶: 9·8·8] 노음이라 한다. 이때 노양과 노음이 변효, 소양과 소음이 불변효가 된다. 이렇게 효 하나의 음양노소를 판별하고 나면 다시 ①의 단계부터 제1변을 진행한다. 이러한 4영3변의 과정을 총 여섯 번 진행해서 괘와 변효를 구하는 것이 주희의 서법이다. 괘와 변효를 구한 다음에 변효가 없는 경우에는 해당 괘의 괘사로, 변효가 있는 경우에는 해당 변효의 효사로 길흉을 점치는 것이 『주역』의 기본적인 점법(占法)이다.
주희의 서법에는 변효가 다수 발생해 점법이 복잡해진다는 문제와 음효의 변효보다 양효의 변효가 많이 도출된다는 문제가 있다. 주희 이후 이러한 서법의 문제점들을 개정하려는 많은 시도들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학자들이 주희 서법의 개정을 시도하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다. 그는 ‘대연지수’ 장과 「계사전」에서 서법과 관련된 내용만을 모아 새롭게 「시괘전(蓍卦傳)」을 짓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새로운 서법을 제시하였다. 그의 서법의 대표적인 특징으로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시책의 개수로 기우(奇偶)를 판별하는 기존 서법과 달리, 시책에 적힌 숫자로 기우를 판별한다. 다른 하나는 시책의 조작 결과 다수의 변효가 도출될 경우 복수의 괘효사를 점단에 이용하는 기존 서법과 달리, 새로운 조작 과정을 추가해 그중에서 다시 하나의 효사만을 선택해 점단한다. 정약용은 이러한 서법 개정을 통해 중국 역학사에서 난제로 남았던 주희 서법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있는데, 이는 역학사적으로 유례없는 창의적인 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본래 점치는 책이었던 『주역』은 진한 교체기 무렵 유교의 경전으로 편입된 이래로 주로 경학 전통 속에서 유교의 우주론과 인간론, 도덕론 등이 담긴 사상서로 연구되어 왔다. 그러나 『주역』은 유교의 사상서로만 독해된 것은 아니다. 『주역』에 ‘이 세계의 모든 변화와 그 원리’가 담겨 있다는 이해는, 『주역』을 유교의 경전으로만 국한시키지 않고 제반 학문과 기술의 원리나 여타 종교의 가르침이 담긴 고전으로 활용될 수 있게 하였다. 이에 『주역』에 대한 연구와 응용은 유교를 넘어 종교, 과학, 문예, 점술 등 다양한 방면에서 이루어졌다.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도교에서는 『주역』을 양생(養生)의 원리가 담긴 경전으로 응용하였다. 한대 위백양(魏伯陽)의 저작으로 전해지는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는 연단(煉丹)의 원리가 우주 변화의 원리와 동일하다는 관점에서 『주역』의 원리와 개념들을 활용해 금단(金丹)의 제작을 해설한 것으로 유명하다. 불교에서는 『주역』을 불교의 가르침이 담긴 경전으로 응용하기도 하였는데, 천태종(天台宗)의 교의로 『주역』을 해석한 명대 우익지욱(藕益智旭: 1599~1655)의 『주역선해(周易禪解)』가 유명하다.
한의학(漢醫學)에는 ‘의역동원(醫易同源)’이란 견해가 있다. 의학과 역학은 근원이 같다는 뜻으로, 한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주역』의 원리나 개념들을 활용해 인체와 치병(治病)의 메커니즘을 설명하였다. 한대의 의학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은 천인상관설과 음양오행론을 바탕으로 오장육부와 경락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설명하였고, 명대 의학자 장개빈(張介賓: 1563~1640)은 송대의 상수역학을 의학의 철학적 근거로 삼아 생리와 병리를 설명하고 「의역의(醫易義)」를 지어 의학과 역학의 상호 회통을 주장하였다.
점술 방면에서는 『주역』의 점법이 다양한 형태로 변용되었는데, 그중 ‘ 육효점(六爻占)’이 유명하다. 괘효사와 그 상징들로 길흉을 점단하는 『주역』의 점법과 달리, 육효점은 한역의 이론인 납갑법(納甲法)을 활용해 괘효의 간지(干支)를 바탕으로 길흉을 점단한다. 『주역』의 괘효사가 난해한 동시에 후대의 일반 백성의 실생활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난점으로 인해 민간에서는 『주역』의 점법보다 육효점이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훈민정음(訓民正音)과 태극기(太極旗), 이제마의 사상의학(四象醫學) 등이 『주역』의 원리와 개념을 응용한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