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의 제4대 왕, 세종의 손자로, 사도병마도총사, 오위도총부도총관, 영의정 등을 역임한 종실·공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69년(예종 1) 5월 남이(南怡)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익대공신(翊戴功臣) 2등에 훈봉되었다. 이듬해에 아버지 임영대군의 상을 당하여 영의정 직임을 내어놓았다.
1470년(성종 1) 정월 나이 어린 성종을 몰아내고 왕이 되려 한다는 정인지(鄭麟趾) 등의 탄핵을 받아 삭탈관직을 당하고 경상도 영해(寧海)로 귀양갔으나, 왕족이므로 배려를 받아 재산을 몰수당하지 않았으며 곡식을 지급 받았다. 귀양간 지 10년 만에 배소에서 죽었다.
성종은 미두(米豆) 10석, 종이 40권을 하사하고 장례를 영해 현지에서 정중히 치르도록 하였다. 1687년(숙종 13) 6월 김수항(金壽恒)이 구성군이 죄를 입은 것은 권맹희(權孟禧) 등의 난언(亂言)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여 신원되고 다시 복관되었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참고문헌
- 『세조실록(世祖實錄)』
- 『예종실록(睿宗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숙종실록(肅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청선고(淸選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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