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7년(인조 15) 중앙에 공이 많았던 사포수(私砲手 : 獵砲)와 투항한 왜인(倭人)의 자손들 가운데서 근무기간이 오래된 자를 등용하였다.
그리고 6개월 동안에 몇 차례 시험한 궁술의 총점수를 계산하여 금군(禁軍)의 예에 따라서 체아록(遞兒祿)을 지급하였다.
처음 그 수는 50인이었으며, 1654년(효종 5) 군비확충으로 60인으로 불어났으나 뒤에 8인이 줄어 『속대전』에는 52인으로 정비되었다. 설치 초기의 임무는 국왕이 거둥할 때 궐내에서는 임금의 말을 양쪽에서 호위하고 궐외에서는 임금의 수레를 호위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한량(閑良)이나 산관(散官) 등을 우대하기 위한 병종으로 바뀌었다. 이들은 말을 납부함으로써 그 역을 면하였으며, 호조에서는 이들에게 마태(馬太)를 지급하였다. 군사로서의 기능은 거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