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처(伏處)’라고도 한다. 경수소는 도성(都城) 안팎의 도적을 방비하고 화재 등을 예방하기 위하여 좌순청(左巡廳)·우순청(右巡廳) 순라군이 야간에 거처하던 곳이다.
설치 시기는 자세하지 않으나 1436년(세종 18) 3월 도성 안팎의 경수소를 정비하여 궁곡심처(窮谷深處)에 13개소만 남겨두었고, 1개소에 오원(五員) 1인, 별군(別軍) 5인, 시위패(侍衛牌) 3인을 배치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국초(國初)부터 설치된 것 같다.
그 뒤 도성의 인구 증가 및 치안 행정이 다양화되면서 세조 때에는 도성 안에 87개소, 도성 밖에 19개소 등 106개소로 늘어났다. 모든 곳에는 정병 2인이 부근에 사는 방리인(坊里人) 5인을 거느리고 활·칼·막대 등의 무기를 휴대하고 숙직하면서 지켰다.
1462년(세조 8)부터는 갑사(甲士)·별시위(別侍衛)·파적위(破敵衛)·별군·기병·보병 등을 동원해 경수소마다 2인씩 배치시켜 방리인과 함께 숙직시켰고, 이들은 3일마다 교대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경성 안팎의 순찰을 훈련도감·금위영·어영청의 3군문과 좌·우포도청이 책임졌다. 동시에 포도청은 좌·우순청을 두고 다음과 같이 16개소의 경수소를 두어 책임구역을 행순(行巡)하게 하였다.
우순청-1패 : 의정부 앞, 2패 : 공조 앞, 3패 : 송기교(松杞橋), 4패 : 소의문(昭義門) 안, 5패 : 경영고(京營庫) 앞, 6패 : 소의문 밖, 7패 : 숭례문(崇禮門) 밖 연못가, 8패 : 도저동(桃楮洞).
좌순청-1패 : 회현동의 병문(屛門), 상2패 : 남산동, 하2패 : 필동, 3패 : 청교(淸橋), 4패 : 의동(義洞)의 병문, 5패 : 재동, 6패 : 수표교(水標橋), 7패 : 흥인문(興仁門) 밖.